손에 대하여
손에 입맞춤을 생각해 냈다. 오늘도 수고했다고
차 안 가득 햇살이 자리를 잡아간다. 오늘은 유독 운전석 쪽으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의 잔주름까지도 투영하고 나섰다.
"당신 손이 요즘 왜 이리 거칠어졌어요,
"아내는 남편 손이 예전과 달리 거칠어진 것이 이내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뭐 내손이 어때어?"사실은 요즘 들어 직장에서 손을 써야 할 일이 부쩍 늘어났다. 거칠어진 손의 주범은 제멋대로 사용한 주인의 관리 소홀을 인정하지만 자신의 손을 관리해야 할 기준이 없었다. 다만 손으로서 역할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전부이었다.
"하긴 예전 사무실 일 할 때에도 당신 손이 지금처럼 비슷하게 거칠긴 했어요"
"원래 남자 손이 이 정도는 크고 두터워야 남자다운 면모가 있지 않겠어?"
오늘따라 손이 거칠다는 말이 왠지 늙었다는 말로 와닿는다.
어느 날부터인가 습관처럼 아침이면 거울을 먼저 보는 습관이 생겨났다. 거울 속에 비추어진 얼굴만을 보고 세월의 흐름을 읽어가는 어리석음이다. 손에 대한 관심 따위는 없었다. 얼굴도 결국은 세월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요즘은 노여움이 부쩍 많이 생겨났다. 말 한마디에 심각할 정도로 감정을 실어간다. 늙어가고 있다는 말과 늙었다는 말에 간격을 두고 해석한다. 뜻의 의미가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는 세심한 마음에 다시 한번 놀랬다.
잠시 주춤되던 혼란스러운 생각 속에서 불현듯 할머니 손을 기억해 냈다. 거북이 등가죽처럼 핏기가 없는 주름 가득한 거친 손에는 할머니만의 세월이라는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그때는 할머니 손만 특별한 손 모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우연히 식당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식사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손에 기력이 떨어져 수저를 잡은 손동작마저 어설퍼 보인다. 평생을 매일 삼시세끼 젓가락질을 해왔음에도 세 살배기 어린애의 젓가락질하는 모습처럼 위태롭다.
아직까지 특별한 동기부여 없이 손에 대해 고민하거나 관대해 보려 하지 않았다. 손톱이 자라나 단지 손 사용이 불편하다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손톱을 깎아주는 단순한 의무가 전부였다. 가끔은 손이 거칠다는 생각이 들 때 로션을 발라주는 배려가 전부였다. 손에 대에 전혀 보상과 배려를 모르고 세월을 보낸 것이다.
한 번은 손이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멈추어 섰다. 세수할 때의 불편함을 시작으로 밥을 먹는 일까지 하루의 시작과 끝날 때까지 손을 떠나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손의 불편을 절실히 느끼던 와중 손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늘 생활 속에 손을 혹독하게 사용하면서도 손에 대한 수고스러움과 경이로움을 생각해 내지 못한 오류가 있었다.
손으로 주물럭 거리기만 해도 세상에 온갖 것들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양념의 존재가치보다는 손으로 음식을 주물러야 음식의 제맛을 맛볼 수 있었다. 결국엔 음식에 맛을 내는 것에도 손맛이 존재했다. 손이 하는 일을 열거하다 보면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다. 손은 진정 모두에게 무안의 감사스러운 손이다. 하루의 시작부터 손에 위해 온몸을 정갈하게 준비시켜 주었다. 매시간 잔잔한 애정의 손길이 담겨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손은 섬세하게 자판을 움직이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손의 역할 없이는 세상과의 소통은 단절과도 같다.
입술은 손의 수고스러움이 있을 때마다 손등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때론 맞잡은 양손은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손이 없는 우리 집 강아지 일상의 행동을 주시해 보았다. 밥 먹는 것부터 시작하여 노는 것까지도 입과 다리로 손의 역할을 대신했다. 자유스로울리 없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손은 휴식도 없이 늘 움직여 주어야 한다는 당연함을 가지고 살아왔다. 머리가 나쁘면 손, 발이 고생이라는 말을 있다. 지금 내 손도 혹시 머리를 대신해 고생하는 것은 아닐까, 손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다.
잠을 청하기 전 오늘 수고해준 양손에 입맞춤을 끝내고 손깍지를 끼고 누웠다. 마음이 평온해져 오고 따뜻한 호흡의 감동이 느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