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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Oct 02. 2023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두 분의 부모님을 떠나보내 드렸다.

올해 들어 두 분의 부모님떠나보내드렸. 장모님과의 이별을 시작으로 어머님까지 뜻하지 못한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한세대가 가면 한세대가 온다고 이야기를 한다. 한세대가 온다는 것은  한세대 또한 떠날 준비를 하는 의미와도 같지 않을까 싶다.


공항에서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은 퇴근 시간과 함께 추석 연휴까지 맞물려 도심을 비롯한 고속도로와 모든 도로가 극심한 교통체증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올해 96세의 연세를 맞이하셨다.

"어머님 장수하셨습니다"라는 인사 말로 조문객 대부분 조의를 표했지만, 그 외에 어떠한 위로의 말로도 가슴에 담아낼 수가 없었다. 사실, 어머니는 백세인생 시대에 백세까지는 무난히 건강하게 사실 것이라 확신해 왔었다.


이별이라는 것은 많은 종류의 유형과 이유를 가지고 찾아온다. 그 많은 이별 중에 인간이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이별이 있다. 예고 없이 불시에 찾아온 이별,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고 성의 없게 일방적인 어머님과 이별의 시간을 맞이했다. 살아있는 자는 죽은 자에게 이별을 고해야 하는 슬픔이라면, 죽은 이는 어떠한 말도 변명도 다.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선 순간 화환이 먼저 조문객을 맞이한다.

밴쿠버에서 한국까지 긴 비행시간 진통 끝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단 하룻밤의 애도 시간만 남아있었다.

입관식까지도 하루 전 이미 마친 상태다. 

어머님의 소천 소식을 전해 듣고 서둘러 밴쿠버를 떠나왔음에도 시간을 맞추기에 거리상 한계가 있었다.


조문객은 친지 이외에 별 다른 지인은 없었다. 캐나다 이주 이후 지인 경조사를 특별히 챙기지 못한 탓에 부고를 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부터 어머니의 장례식 준비에 분주했다. 어머니가 다니시던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운구 행렬은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예식이 끝나고 분골이 유가족에게 전해졌다. 어머니의 육신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흔적을 남기셨다.

서울 동작동 현충원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마지막 예절인 안치식과 함께 아버님이 잠들어 계신 납골묘역나란히 안장되셨다.


비몽사몽이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어머니의 운명 소식을 접한 이후, 장례기간이 끝나는 시간까지 밤낮의 구분을 잊은 채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장례식을 모두 끝나고 근교에 있는 아들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머무는 하루 내내 어떠한 음식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해진 몸으로 힘든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아들의 해외 출장을 배웅하고 공항 인근 누님댁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집으로 떠나기 위해 공항에 와 있다. 아들은 장례기간 동안 힘들어하는 아빠를 위해 공항 도착 전 카톡으로 스카이라운지 이용권을 보내와 지금 라운지에 앉아 있다.


라운지에 자리를 잡고 핸드폰을 열었다. 공항 도착 전 누나가 보내온 카톡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네가 누나 집에서 떠나고 누나 마음이 이리 마음이 허전한지 모르겠다."

"누나! 엄마가 없어서 더 그런가 봐"

누나는 잠시 머물다간 동생의 빈자리까지 허전함으로 다가섰던  같다.

카톡을 바로 끝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엄마 살아생전 매형이랑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통화하는 내내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머니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흔적 때문이다. 


"에어캐나다가 예정된 출발 시간보다 1시간 20분가량 연착할 예정입니다" 

탑승항공사에서 알림이 도착했다. 혹시, 어머니의 영혼이 아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비행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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