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섭 Sep 26. 2023

올해가 환갑입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에 위로를 받아본다

오늘 61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평상시 생일이라는 말을 내려놓고 환갑이라는 이름으로 케이크를 잘랐다. 그동안 생일 때에는 외식보다는 아내의 정성이 담긴 음식으로 집에서 생일상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었다. 이번에는 아내의 권유로 가정이  아닌 식당으로 옮겨 조촐하게 가족끼리 저녁으로 환갑을 대신하기로 하였다. 아내는 환갑을 축하한다고 술 한잔을 따라주었다. 생일도 아닌 환갑이라는 말이 왠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다. 옆 테이블에서 혹시 환갑이라는 말을 듣지는 않을까, 갑자기 왠지 모를 어색함이 밀려온다.


어렸을 때 이웃에서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을 흔하게 보았다. 백세 인생시대인 요즘은 환갑잔치 풍경을 찾아볼 수가 없다. 60대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부고를 받아 보는 기회도 거의 없었다. 설상 있다고 할지라도 갑작스러운 불의에 사고 또는 질병으로 인한  이외에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주위에서 가끔은 60대의 부고를 접할 때가 있다. 아직도 살날이 무수히도 많이 남아있는데 빨리도 단명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와닿는다.


시대적인 환경에 따라 나이의 보상 조건도 달랐다. 세계는 70세를 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의 규정과는 달리  65세부터 노인이라고 불린다. 시대적 흐름에 노인의 나이가 빠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정부는 노인을 70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직 환갑인 나이는 할아버지보다는 아저씨가 적절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호칭임에 틀림이 없다. 김광석의 노래 중에 어느 60대의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노래를 기억한다. 김광석이  노래를 부르기 전 1990김목경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이라고 한다. 33년 전 60대 노인의 나이는 지금 아저씨라는 젊은 나이로 탈바꿈되어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올봄 아들의 상견례가 있었다. 예비 며느리가 생일 메시지를 전해 왔다.

"아버님~~ 제인이에요!
생신 너무너무 축하드려요. 같이 함께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그래도 이번에 준우오빠랑 곧 밴쿠버 놀러 가니 가서 우리 좋은 시간 보내요ㅎㅎㅎ. 내년에는 생신 같이 보낼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항상 건강하시고 같은 가족의 일원이 되게 되어서 너무너무 좋아요 ㅎㅎㅎ 다시 한번 생신 축하드려요~~!!

분명히 이번 생일이 환갑이라는 것을 아들을 통해 알고 축하 메시지를 보낸 듯한데 생일 이외에는 환갑이라는 문구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예비 시아버지에게 노인이 아닌 아저씨 같은 젊은 아버지로 인정해 준 배려는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만약, "아버님 환갑 축하드려요"라고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면 아무런 마음의 동요 없이 받아들였을까,


나이에 대해 세월이 갈수록 민감하고 예민해진다. 사실 4.50대 때에는 주변에서 십 년 이상 젊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때는 나이보다 적게 보는 것이 왠지 불편하고 싫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노숙해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특히 남자들에게 나이는 민감하다. 상대에게 우월하게 보이는 무언의 힘 같은 것이 작용했다. 특히, 남성의 경우에 한두 살 나이차이는 예민할 정도로 선후배의 선이 확실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위계질서 존중이라는 사고 때문인지 모른다. 나이에 대해 예민하게 발버둥 치고 고민해 보아도 별다른 해답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나이에 속 끓이지  세월순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하다.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엇을 했는지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질 때가 많다. 기억을 가끔 더듬어 보아도 옛 기억이 쉽게 생성되질  않는다. 그때마다 기억상실증이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요즘은 추억하는 기억보다는 후회하는 기억의 횟수가 훨씬 더 많이 기억 속에 맴돌다가 사라져 버리곤 한다. 특히, 젊은 날에 후회의 횟수가 많이 작용했다. 그때 좀 더 후회 없이 노력했다면이라는 자책감이 우선했다. 막상 다시 시간을 되돌려봐 달라지는 상황은 별반 없을 듯한데 아쉬운 욕심이 과거를 매번 지배하고 산다.


누군가는 인생은 60부터라고 했고, 어떤 노랫말 가사에는 나이는 먹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 위로했지만, 그 역시 마음에 와닿는 마음의 안식을 얻어내지 못했다.


십 대 때에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이십 대에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었다. 삼십 대가 되어 가장이라는 의식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고, 사십 대가 되면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치열한 경쟁 구도속으로 전격 진입했다. 오십 대가 되면서 가장으로서의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홀가분하게 그동안의 일들을 내려놓고 안정을 가지고 살 것 같았던  60대에도 여전히 무거운 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지금 대부분의 60대가 무거운 짐을 덜어내지 못하고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위로가 아니라 진실의 나이라고 믿고 환갑을 맞이했다. 그래야 스스로의 위안이 될 것 같아서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있는 시간, 어머니가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