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민생활에게
누구나 한 번쯤은 새로운 삶이라는 이민을 꿈꾸면 살아간다.
어느덧 이민 생활 10년째를 보내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내 인생에 얼마만큼의 거리었을까, 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의 거리감을 가지고 일축했지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에는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다. 몇 달 전 고국을 방문했을 때 산을 호위하고 있던 도심의 지형은 몰라보게 바뀌어 버렸지만, 십 년이 지난 강산은 어디에도 변한 모습을 찾아내지 못했다. 산은 변할 수는 있지만, 본래의 산은 산으로 존재할뿐 도심처럼 새롭게 바뀔 수 없다는 자연의 섭리에 순간 울컥한 감정을 가져온다.
10년 전 새로운 출발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무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땅 캐나다에 불시착했다. 아내와 애들이 7년 전 이미 캐나다에 삶의 터전을 옮겨놓았다. 가족이 그것에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가 망설임 없이 이민을 결정하게 했던 것 같다. 우선 수십 년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고 기러기 생활 7년의 시간을 정리했다. 사실 이민을 결정하고 구체적인 목표나 대안도 없었다. 적지 않은 나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어떠한 기술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영어 또한 생계형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민의 조건을 따져보아도 합격점수를 줄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몸으로 때우자" "산 목숨 거미줄 치겠는가"라는 마음으로 건강을 담보로 삼았다. 어찌 보면 무모하고도 극히 극단적인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이 지천명이라는 50세를 갓 넘긴 나이었다. 십 년 전에는 수명연장의 시대라고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백세 인생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던 시절로 기억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백세 인생 시대와 더불어 나이는 날로 젊어져가고 있다. 아마도 10년 전 갓 50세의 나이를 현재의 시간 앞에 옮겨 놓았다면 좀 더 젊어 보이는 중년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또한 좀 더 폭넓은 새로운 꿈을 향해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의 시간이 밀려든다. 물론, 지나간 시간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한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민 초기에는 현지 한인 신문을 통한 구직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말로만 듣던 디쉬워셔라는 일부터 시작하여 가드닝 일까지 이민 초기 다수 이민자가 가져본 전형적인 일들일 경험했다. 이민 1세대들은 수십 개의 직업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나 또한 시작은 그들의 이민 생활과 다를 것이 없었다.
문득, 스스로에게 이민 생활 10년의 소회를 물어본다. 나에 이민 생활에게 그때는 어떠하냐고?, 그땐 무모할지라도 망설임 없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는 존재했다고 거침없이 말을 옮겨 놓는다. 아마도 그때에는 미력하나마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지금은 어떠했냐고 물어보았다. 지금은 이전의 상황과는 달리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기도 전에 두려움이 먼저 나를 낮추었다. 결국엔 핑계가 예전과 다르지 않게 또다시 나이 탓으로 부메랑 처럼 되돌아온다. 막상 10년이 지난 후에도 오늘처럼 똑같은 핑계를 가지고 반복된 시간을 이야기하고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 "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을 때"라고 한말이 생각이 난다. 그 말처럼 항상 젊다는 긍정의 마음을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하는데 마음과 행동이 일치를 보지 못한다. 삶은 어쩌면 나의 이민 생활과는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늘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새롭게 도전하고, 나중에는 무기력함과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
오늘도 국적 불문의 비행기가 상공을 날고 있다. 상공에는 그리움의 조각 두 개가 떠다닌다. 하나는 옛 동산 위에 두둥실 떠다니던 멍게구름이다. 또 하나는 태극 모양을 한 비행기의 조각이다. 오늘도 나의 이민생활에게 물어본다, 지금까지 나의 이민 생활은 어떠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