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은화초처럼사람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리를 잡고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세월을 지켜갔다. 나무는인간에게 보살핌이라는 존속된 용어보다는 그냥 혼자도 묵묵히 존재할 수 있는 나무로 불러졌다.
초저녁 식사를 하던중이었다. 현관 밖에서 누군가 다급한느낌을 가지고 초인종을눌러 된다. 특별히 찾아올 만한 사람도 없는 상황이라 현관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엔 궁금증이 함께 묻어갔다.현관문을 여는 순간 옆집에 사는 Bob이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 서 있다. 순간, 무엇인가 따지러 온 느낌이 들었다. 눈이 마주치기도 무섭게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말을 꺼내었다.자기 정원에 나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뜬금없는 그의 말에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것도 밤도 아닌 환한 대낮에 집 앞 정원에 나무를 누군가 가져갔다는 것이다.
Bob과 함께곧바로 정원에 가보았다.밥의 말처럼 정원에 있어야 할 나무가 없었다. 누군가 나무를 베어 가고나무 밑동 부분만 남아 있었다. 누구보다Bob의 정원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현장을 목격한 후 여러 정황을 가지고 생각해 보았지만 의문의실마리가 좀처럼 잡히질 않았다.
잘려나간 나무는 고작 1~2년 정도 지나지 않은 어린 묘목에 불과하다. 나무 도난 사건의목적을 유추해 보았다.정원수로 사용할 의도였다면 나무를 뿌리째 송두리캐갔을 것이다.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어 크리스마스 츄리 용도는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츄리용도 또한 적합할만한 용도는 결코 아니다.그렇다면땔감으로 용도(?) 사실 땔감사용 목적으로는 나무 몸집이 빈약하다.이리저리 생각을 정리를해 보아도 상식선으로 이해 불가한 상황이다. 더더구나 밤도 아닌 대 낯에 대범한 절도 행각을 생각해 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아무 용도에도 적합하지 않은 나무를 베어갔다는 사실만을 미루어 두고 볼 때 혹시 주변에 원한 관계로 인한 경고성 내지는 분풀이는 아니었을까 추측해 보았다.
Bob은 일단경찰서에 신고를 하는것으로 일단락 짓었다.
다음날 Bob을 정원 앞에서 다시 만났다.아침 무렵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조사 결과 나무를 베어간 사람은 다름이 아닌 시청 직원이 진범이었다. 주인의 허락 없이 나무를 잘라내야 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일단 Bob의 정원 안에 나무가 Bob의 소유로 믿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다.Bob의정원과 인도를 경계로 국가소유의인도 지분이정원으로 일부 사용하고 있었다.없어진 나무는국유지 부분에 심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나무 주인은 시청임과 동시에 나무 관리대상 또한 시청이었다. 사건 전말은 극히 단순했다. 시청 직원이 순찰 도중 병충해를 입은 사건의 나무를 것을 발견했고. 주변의 나무도 병충해 영향을 미칠 것이라판단하에나무를 잘라 냈던 것이다
우리 집 뒷 정원에거목이집안에 내려앉는 햇살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거목에서낙엽이 지붕으로 수시로 떨어져 매번 지붕 청소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겨나고 있다. 항상거목과마주칠 때마다나무를 베어내야 하지 않을까하는 갈등이수시로 생겨났다.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지만, 사유지 내에서도 나무를 베어 낼 의도라면 우선 시청에 벌목 허가 신청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가 있다고 한다. 워낙 나무가 크고 오래되어 벌목 처리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경제적인 부분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캐나다는 풍부한 산림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우스개 소리로 벌목을 시작한시점에 다시 돌아오면 이미 묘목이 벌목
당시만큼 성장해 있을 정도로 숲이 풍부하다고 한다.
나무를 보면 항상 솔직함이 묻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모든 풍파에도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켜내었고 내려준 계절 앞에서도 순응할 줄 아는 미덕이 있었다.
잃어버린 나무의 행방을 찾는 순간, 나무 한그루 한그루마다에 캐나다 정부의 세심한 정성과 노력이있다는 교육적인 느낌을 받았다. 정성과 노력의 대가는 캐나다 주변 자연환경이 아름다울 수 밖에는 없었다는 명확한 이유가 되었다.
시청에서 정원에 새로운 묘목을 심어놓았다.
그 후 며칠이 지나고잃어버렸던나무의 자리에 묘목이 심어져 새로운 꿈을 꾸고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