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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Nov 21. 2023

고래 잡으러 동해로 떠납니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 고래사냥이나 하렵니다

출근길에 아내가 남편의 배웅을 위한 운전대를 잡았다. 아내는 출발 전 음악을 열심히 선곡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뜻하지 않은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라는 노래가 차 안에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예전보다 볼륨을 좀 더 올려놓은 것 같다. 아내의 취향이 아닐법한 선곡이다. 그렇다고 남편의 취향도 아닌 노래이다. 아침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선곡에 다소 시끄러움이 밀려오는 느낌이다. 

"갑자기 이 노래는 왜?"

"당신 이 노래 듣고 신났으면 해서요 "

오늘은 회사 마지막 출근길이다. 아내는 남편이 침울한 감정을 가지고 마지막 출근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래사냥이라는 흥겨운  노래를 선곡했다고 한다. 고래사냥은 젊은 날에 한참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던 곡 중에 하나이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노래의 의미보다는 노래를 듣는 순간 젊은 날의 추억이 주막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마지막 출근길이 아내가 우려하는 마음처럼 굳이 침통할 이유는 없다. 불명예스럽다거나. 아니면 떠밀려 그만두는 것도 아닌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직이기 때문에 퇴직의 개념과는 달리 마음이 가볍고 자유로울 수도 있다. 물론, 그동안 숱한 시간을 보내온 직장이기에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인지에 대해서는 글 속에서는 비밀로 남겨두려 한다.


"떠날 때에는 말없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두고 나온 명언 같은 구절은 아닐까,


퇴직의 소회를 말하라고 하면 자유의 날개를 단 자유인이라는 말로 축약하고 싶다. 자유의 날개제일 먼저 떠올리는 순간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의 설레는 감정이 가슴을 적시어 갔다. 자신이 열정적으로 행했던 일을 내려놓을 때에는 흔히들 "시원섭섭하다"라말로 의미를 전달한다. 시원하다에는 동의를 한다. 대신 섭섭하다는 감정의 동요는 사실 좀 더 보류하고 싶은 시간을 가지고 싶다.


그동안 캐나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직업군과 또 많은 유형의 사람들을 경험해 보았다. 경험했던 그곳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또한 이해 불가한 특별한 경험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퇴직의 사유는 여러 형식의 이유들을 가지고 갈 것이다. 나의 사직은 마음의 건강을 살찌우고 싶다는 생각이 맞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 퇴직은 영원한 퇴직이 아니다.


한국에서의 60세는 사회가 정하고 있는 은퇴 연령이기는 하다. 물론 캐나다는 은퇴 연령을 제한하지 않았다. 단, 65세부터 국가에서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시점이 은퇴를 고려할 수 있는 연령대가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몇 년 동안 경제 활동이 가능한 나이기는 하다. 물론 은퇴와 퇴직은 다르다. 아직은 은퇴가 아닌 퇴직 정도로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 수명 연장 시대는 갈수록 일할 수 있는 나이가 젊어가고 있기 때문에 사회 테누리 명시한 은퇴(retire)의 나이는 사실 실효성이 없다.


내일부터 직업은 약속 없이도 자동적으로 백수이다. 

"나는 백수이다, "

어감 자체가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일단 직업이 없는 백수인 것은 맞다. 그렇다고 백수의 기간을 특별히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 무작정 일 년 정도만 쉬어가면 어떨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 전부이다. 쉬는 기간에 관계없이 경제력만 뒷받침된다면 굳이 기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격상 일하는 공백의 시간이 장기화될 것 같지는 않다. 쉬어도 계획은 있어야 할 듯싶다. 쉬는 동안 무엇을 할까, 사실 계획 잡기가 쉽지 않은  고민거리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주어진다면 ~를 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 하고는 다르다.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니 마찬가지로 아주 단순하고도 소박한 것들이었다. 꿈이 아닌 언제든지 현실 적용 가능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백수가  과로사한다


백수는 백수 나름대로 하는 일 없이 바쁘다고 한다. 백수의 의무를 지켜가기 위해 과로사 정도는 아닐지라도 규칙적으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엔 동의한다.

마지막 퇴근 무렵 몇 가지 선물이 손에서 마음으로 전해졌다. 오늘 퇴근길이  인생에 마지막 퇴근길이 될지, 아니면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지는 오늘 마지막 퇴근길처럼 준비되어 있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시간도 있고 하니 태평양을 건너 고래잡으로 동해로 떠나볼까,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가기엔 너무 느릴 것 같고, 신화처럼 소리치는 고래가 아니더라도 가슴속에는 내 꿈하나 뚜렷이 남아 있을지 모를 동해바다로 고래 잡으러 떠나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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