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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Nov 18. 2023

나도 할아버지가 되어 가고 있다

난생처음 할아버지라는 소리에 충격을 받았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부속 어린이집( Daycare) )있다. 어린이 집에는 3살에서 5살 사이의 유아들이다. 캐나다 영역이다 보니 어린이집이라는 명칭보다는 주로 Daycare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가끔은 업무적인 일로 Daycare에 갈 일이 생긴다. Daycare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놀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문 앞으로 집중된다. 마치 동물원 원숭이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는 표정이 상황의 설명 중 가장 잘 적절한 표현인 듯싶다. 


두 명의 아이가 경계심 없이 문 앞으로 달려와 고개를 반짝 올리고 까치발로 눈높이를 맞추려 애를 쓴다. 한 아이가 호기심 반 관심반으로 말을 걸어왔다.

"할아버지는 몇 살이에요"

Daycare에는 외국 어린이도 있지만 대부분 한국 2세의 어린이들이 많이 있다. 부모가 한국 정서에 익숙함 때문인지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이 한국어에 유창하다.

"할아버지ᆢ?"

첫 질문이 나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실 나이라는 질문 앞에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왠지 꺼림칙하다. 난생처음 듣는 할아버지의 호칭이 아직은 낯설다. 아직은 오빠는 아니더라도 아저씨라는 호칭까지는 자신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이는 제일 먼저 나이를 물어보았을까, 아이 눈에는 정말 나이가 궁금했던 것일까, 숱한 의문의 상상을 가져간다. 흔히 사회에서 만나면 이름 또는 나이를 통상적으로 먼저 물어보기는 하지만 아이의 첫 대면에 나이에 대한 궁금증은 사실 질문의 요지와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의도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예고 없이 뒤퉁수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내가 할아버지 같아 보여"

"네"

 "할아버지 나이는 알아서 뭐 하게"

"그냥 궁금해서요"

"그냥? 그냥 왜 궁금한데"

"그냥 궁금해요"

아이의 대답처럼 아무런 표정 없이 그냥이었다. 일종에 뜻도 의미도 가지지 않은 영혼 없는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옆에 있던 아이도 호기심 가득 찬 얼굴을 하고 하려는 순간, 

"넌 뭐 궁금한 것 없니"

먼저 질문을 받았다.

"아저씨는 어디 살아요"

"너는 내가 아저씨로 보이니"

"네"

"왜 아저씨 같아 보이는데"

"그냥요"

아이는 아저씨로 보이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이 아이는 아저씨라고 불러주었다. 조금 전 할아버지라는 호칭에 누명을 벗은 느낌이다

"! 아저씨 어디 사는지 알아서 뭐 하게"

"그냥요"

아이의 공통점이 발견되는 순간이다. 

단지 그냥이 이유였다.

할아버지라고 불렀던 아이는 어쩌면 자신의 할아버지 모습을 나에게서 순간 찾았는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에는 나이보다 좀 더 성숙해 보이싶었다. 실제 나이에 비해 적게 보면 기분이 불쾌했다. 아직도 마냥 애 취급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젊게 보아줄 때 그때가 좋을 때다"

속상에 하는 아들의 마음을 위로하듯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땐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형과는 6년 터울이 있다. 형의 옷을 몰래 입을 때가 많았다.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옷으로 연출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옷을 입어도

성숙함보다는 왠지 어색함이 풍겨왔다. 일종에 촌스러운 같은 것이다. 그때는 교복 세대이기 때문에 평상복을 세련되게 입을지 몰랐다.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반전된 상황이 되어버렸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이를 숨기기 위한 노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젊게 변신하는 일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한 노력은 마치 구걸하는 듯한 느낌에 마음이 유쾌하지 않았다.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살만 보아도 세월의 흔적을 덮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적당히 하나를 가려 놓으면 또 다른 곳을 감추어야 하는 수고로움은 끝이 없었다.


"세월에 뭐~장사 있겠니"

혼자 영혼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현실 앞에 다시 다가선다.

오늘은 식탁에 마주 앉은 아내의 모습을 모처럼 관심 있게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예전에 비해 늙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할머니 같은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당신은 내가 할아버지 같아 보여"

"당신 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내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질문에 의아스러운 표정이다. 사실 아내만큼은 보이는 데로 진실만을 이야기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물어본 본 것이다. 아내에게 오늘 데이 케이어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내는 말하는 도중에 한참을 웃는다.

"당신이 아직까지는 할아버지 정도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4살 자리 아이 눈에 할아버지로 보이는 것은 정상 아니겠어요"

젊은 오빠는 아니더라도 아저씨 정도는  당연히 기대하고 자신만만하게 살았던 생각에 오류가 있었던 것일까. 그래도 할아버지와 아저씨 호칭의 스코어는 아직은 일대일이다.


거울의 진실을 믿기 때문이다. 


한 번도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에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그러던 언제부터 가는 아침마다 습관처럼 거울 앞에 먼저 다가서는 습관이 생겨났다.

어떤 날은 내 모습이 젊어 보일 때가 있다. 거울에 애절한 바람의 진심이 모처럼 통했나 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거부하고 밀어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늙어 보인다는 말에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게 모든 것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누구나 세월 가면 먹어가는 나이에 자동적으로 얹어지는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더 이상 밀어내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눈에는 여과 없이 보이는 데로 눈의 순수함을 가지고 말을 했다. 

"당신이나 나나 멀지 않아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명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날이 멀지 않았어요"

"그래도 당신은 아직 할아버지 정도의 모습은 아닌데ᆢ"

아내는 오늘 있었던 충격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아직은 할아버지로 인정해주려 하지 않는 아내는 영원한 내편이 맞았다.

"당신이 날 할아버지로 인정하면 당신도 자연스럽게 할머니로 인정하는 것 아닐까, "

"그래서 할머니가 되기 싫어 당신 편이 된 것 아니겠어요"

"그래 맞다 ㅎㅎ"

서로의 표정을 마주하고 너털웃음을 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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