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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Oct 22. 2023

지금은 새벽 4시

오늘 내가 맞이하는 새벽은 맑음이고. 영롱한 햇살이었다.

거실공기가 건조하다. 벽난로가 모처럼의 열기를 내뿜은 까닭일 것이다. 거실 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새벽공기가 밀물처럼 밀려든다. 창밖을 향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며칠 동안 햇볕 없는 비 오는 날을 보내었다. 그 사이 가을은 무르익어 갔다. 가을인가 싶었던 계절은 늘 겨울 앞에 서 있다. 가을이 짧기만 한 이유이다. 짧다는 아쉬움에 늘 가을의 시간을  집중했는지 모른다. 벌써 시월도 하순의 중간 지점에 와 있다. 정말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새벽은 고요해서 좋다.

새벽은 유일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새벽시간 중에 제일 풍요로운 마음을 가졌다.

새벽은 가을을 닮았다.

새벽은 사색의 시간을 내어 주었고, 새벽을 느끼기도 전에 아침이 밝아왔다. 세상도

새벽의 고요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새벽은 누구에게나 특권 없는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새벽의 시간을 가져가는 사람에게는 부지런하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먼저 앞서 이른 새벽을 일어나야 하는 수고스러움도 있지만, 선택은 옳았다.

새벽의 모습은 늘 고요하지만은 않았다. 고민스러운 사연을 달고 올 때도 있었다.

새벽은 삶의 경계선이 없어 좋다.

새벽은 온순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닮았다. 어쩌면 어린아이를 품은 어머니의 품속을 더 많이 닮았는지도 모른다.

새벽은 사유를 버렸다. 때론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을 담아도 새벽의 시간은 항상 좋았다. 때론 힘겹게 무거운 눈꺼풀을 벗고 나면 자유를 얻은 기분이다.

새벽은 어제의 시간과 미리 다가올 시간을 교류했다. 지나간 시간은 반성의 시간이었고, 아쉬움의 시간이었다. 다가올 시간은 희망의 시간을 그렸다.

모두의 새벽의 시간이 공평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자신의 마음의 지향에 따라 새벽은 달랐다.  

새벽 시간에 평온함을 주지 못하면 전쟁 같은 하루의 삶을 살아야 했다.


새벽 다섯 시가 되었다. 아직도 창밖에는 자욱한 어둠만이 존재하고 있다. 

밖은 아직 까지도 고요를 외친다.

웬일일까,

오늘이 휴일의 새벽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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