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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Oct 12. 2023

우리의 만남은 우연히 아니었다.

우리가 가지고 가는 인연을 얼마만큼 서로에게 존중하는가,

모처럼 가을비가 촉촉하게 하염없이 내린다.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1989년에 발표된 노래를 만났다. 노사연의 "만남"이다. 잊고 살아온 과거의 시간 속으로  한참내려가보니 꿈 많고 풋풋했던 20대의 나의 과거가 보이기 시작했다. 노래를 듣는 순간 울컥했다. 울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순간의 감정은 미쳐 과거를 생각해 내지 못했다. 형용할 수 표현의 마디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아마도 비가 감성을 얹어 주는 느낌도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영어로 만남은 Meeting이라는 언어를 가진다. 외래어가 되어 버린 Meeting이라는 단어는 일상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단순하게 와닿는다. 한국의 정서 때문일까, 한국어의 만남이 주는 의미는 마냥 정겹기만 하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만나고 있고 감정에 따라 지속적인 관심 속에 만남을 가져가고 있다. 노랫말 가사처럼 우연히 아니고 바람이었을지도 모를 만남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남이 주는 관계는 어쩌면 단순한 관계일 수도 있다. 운명 같은 만남.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잘못된 만남이 다른 의미의 갈림에 고민을 한다. 주어진 만남을 우리는 적절하게 받아 드리지 않았을 때 잘못된 만남을 전재로 인연을 끊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연과 안고 인연이라는 감정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부모와 자식 간의 철윤의 관계와 함께 친척이라는 혈연의 관계가 있다. 그 외의  만남의 부분은 아마도 우연은 아니었을까,


결혼 32년을 맞이하고 있는 배우자와 제일 가까운 필연 같으면서도 어쩌면 우연 같은 만남을 전재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만남을 요약해 보면, 축복된 만남과 만나지 말아야 하는 잘못된 만남이 동맹한다, 숱한 만남에는 수식어와 의미를 달리  이유가 다분하다. 축복된 만남은 늘 결연한 마음이 있었고, 잘못된 만남은 버리고 또 버려도 증오감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제는 내려놓아도 될 시점임에도 시간을 찾지 못했다. 인생, 즐겁게 살아가기에도 바쁜 이 시간에도 질투와 시기의 계속되어 갔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이유의 만남이 다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 아의 뜻이 확연하게 틀린 한국말에 수식어의 관계 또한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 냈다.


미움 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구분선을 정확히 구분해야 하는데 감정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분별력 없이 욱하는 흐려진 판단력이 행동에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 무시하고 진정하고 소중한 것들을 품어가야 시간도 부족한데 쓸데없는 소비의 시간에 마음만 분주하다.


오늘은 만남에 대해 진심을 가지고 그 의미를 따라가 본다.


노사연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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