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시간 무렵, 몇 달 전 독립한 작은 아들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뜸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바쁜 일이 생겨 수고스럽지만 아빠. 엄마가 잠깐 자신의 아파트에 들려 데리고 가면 안 되겠냐고 한다.
아들은 강아지(Gogi) 사료가 담긴 박스만을 달랑 가지고 아파트 앞에 나와있었다. 이것이 강아지가 집을 옮기는데 전부인 이삿짐이다. 이삿짐 치고는 너무 심플하다. 옛날에 사과 기짝(상자) 하나 가지고 이사한다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Gogi의 일상 용품이 집에서 옮겨가지 않았기 때문에사실 별도의 짐을 챙길 일은 없었다.
Gogi는 반가움도 잠시이다. 차를 보는 순간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경직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차 타는 것을 싫어했다. 차멀미 때문인가 싶어 미리 멀미약까지 먹여 태워도 보았지만, 차멀미를 여전히 했다. 물론 집에서 출발하기 전 미리 준비한 시트 커버를 깔아 놓았다. 집까지는 십분 내외의 짧은 시트에 있다. 출발한 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시트커버가 온통 침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몸까지도 경직되어 잔뜩 힘을 주고 앉아 있다. 차멀미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차가 달리는 순간느끼는 공포감도 있는 것 같다. 둘 다에 아마도 원인이 있는 것이 맞을 것 같다.
Gogi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오는 내내 왠지 서글픔과 측은한 생각을 거둘 수가 없다. 아들의 아파트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Gogi가 며칠 동안 간간히 설사를 했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싸지도 못하고 참고 버티고 있다가 배변을위해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 순간 그 틈을 참아 내지 못하고아파트 복도에 그만, 몇 번의 실례를 했다고 한다. 몇 주 전에 일어났던 일을오늘에서야 아파트 매니저는 강아지 거처를 옮겨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아파트 주민중 누군가가 불편함을 강하게 호소한 듯하다.
주민에게 반감을 가지고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아파트 실내 복도에 대변을 실례했으니 주민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앞서 배가 아프고 고통스러웠을 텐데 집안에서실수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힘겹게 참고 견디어 냈을까 하는 Gogi의 행동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이럴 때 우리는 말 못 하는 동물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쉽게 풀릴 수 있었던 문제인데, 말을 못 하는 대가는 고통뿐이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Gogi가 주변을 돌며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두리번거리는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공을 찾아 던져 주었다. 던진 공을가져와 앉아 있는 소파 발 밑에 내려놓고 앞으로 달려 나가 바짝 엎드려 공만을 주시하고 있다. 공을 빨리 던져 달라는 몸짓 신호의 언어이다. Gogi에게는 먹는 것보다 공은 최상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모든 강아지들이 공을 좋아한다. Gogi는 공만 있으면 맛있는 음식은 물론 그 어떤 것을 가져다 놓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에 대한 집착력이 강하다 못해 병적이기도 하다.
마침 큰아들이 하루 안부를 묻는 카톡을 해왔다. Gogi사진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고 아들에게 짧게 소식을 전했다. 아들은 Gogi가 집에 잠시맡긴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아들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강원도 어느 농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Gogi와 같은 견종의 보더콜리가 있어 사진을 찍어 보내온 것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추운 겨울을 밖에서 보내는 강아지가 안쓰러워 보인다.
"하룻밤만 주인을 저기 강아지 집에서 재우면 어떨까"
아들은 아빠의 말에 박장대소를 한다. 농장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면서 경계를 유난히 많이 하고 짖기도 많이 한다고 한다.
"아빠! 고기는 저 강아지에 비하면 행복한 거야"
아들 말이 과연 맞을까, 말 못 하는 동물이기에 앞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 집 강아지와 농장에 갇혀 지내는 강아지 둘 다 행복 기준은 과연 어떤 것일까 잠시 고민을 해본다.
털이 달린 동물이기는 하지만, 엄동설한에 밖에서 자려면 추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일단 우리 집 강아지는 환경면에서 행복한 것이다. 물론, 캐나다는 아파트 여건상 집에서 키워야 하지만, 주택도 예외는 아니다. 거의 대부분 집안에서 키운다. 일단, 한국과 환경 조건 자체가 다르기때문에 행복 기준도 바뀌어 갔다
다른 견과는 달리 보더콜리는 양치는 견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지능지수가 다른 견에 비해 매우 높다고 인식되어 있다. 그렇다면 목줄에 메여 갇혀 있는 강아지의삶 보다 최대한 행복 조건은 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는 것이 맞다. 물론 먹고 자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어디든, 어떤 것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만족은 없는 것 같다. 만족은 넉넉하다. 충족하다의 뜻이고 보면 만족의 기준치를 또한 가늠할 수가 없다. 상대가 만족이라고 인정하는 부분도 본인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존해 있는 이상, 만족의 기준은 없을 것 같다. 만족에는 욕심이 커가고 있기때문이다. 욕심을 비우면 만족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성인의 도량을 갖추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
요즘 매일매일 산책을 한다. 이유는 뱃살 빼기 작전에 도립 했기 때문이다. 산책을 할 때마다 매 순간 Gogi를 생각했었다. 오늘부터는 산책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는 순간까지 열심히 우리 집 강아지와 산책길 동행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