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이른 아침 공항에서 만났다. 아들은 차박에 필요한 장비를 가득 싣고 왔다. 아들의 출장기간에 맞추어 5박 6일 동안 차박을 하기로 했다. 자동차 키를 아빠에게 넘겨주고 아들은 곧바로 공항 탑승구를 향해 떠나갔다. 차에 올라타는 순간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빠른 윈도 브러시 움직임에도 도로의 방향을 읽을 수가 없다. 마치 길 위에서 집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폭우로 인해 차박을 강행해야 할지 혼선이 생긴다. 차박을 위해 특별한 계획없이 갑자기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차박 여행이다. 차박에 관련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이다. 동해바닷가를 기점으로 거제도까지 대충 최종 행선지까지의 큰 그림만 그려 놓은 상태이다. 일단. 첫 도착지인 동해에 도착해서 상황에 맞게 일정을 잡아 소화하기로 했다. 흔히 이야기는 무전여행인 셈이다.
멈출 것 같지 않았던 폭우가 강원도 지역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언제 비가 내렸는지 모를 정도로고속도로 주변도로에는 비가 내린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출발부터 비와의 홍역을 치러 가면서 동해 망상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서울 경인지역의 폭우가 내리던 날씨와는 상대적으로 동해의 푸른 하늘은 바다를 호위하고 있었다. 순간, 축복받은 땅에 도착해서 하늘과 거대한 바다까지 통째로 선물 받은 느낌이다.
이민생활 이후 한동안 동해 바다의 숨결을 느껴보지 못했다. 거의 십 년 만에 와 보는 동해바다인 듯하다. 십 년이어제 같은 친근함으로 바다와 눈마침의 인사를 나누었다. 이민 전에는 가족과 함께 동해안을자주 찾았다. 오늘 첫 도착지인 망상해수욕장도 그중 하나이다. 동해안에무슨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일까, 떠나고 나면 허기진 눈으로 또다시 동해 바다를 그리워했었다.
여름 피서철을 맞아 망상해수욕장은 완벽한 손님맞이 준비를 끝내고 피서객을 기다리고 있다.계속되는 장마 비소식 탓에 사람으로 붐벼야 할 해수욕장은아직도 피서객의 움직임이 한정되어 있어 휴가를 즐기는 나로서는 여유롭게 바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휴가란 많은 사람으로 붐벼야 휴가의 제맛이 있다.
망상 해수욕장 주변에는 차를 이용한 캠핑장이 마련되어 있다. 음식을 조리할 기구와 재료가 특별히 준비되어 있지 않아 캠핑 라운드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백사장과 마주하고길게 주차장이 준비되어 있다. 한눈으로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제한적인 캠핑카가 몇 대가 주차장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캠핑카가 몰려있는 쪽으로 이동 주차시켜 놓고 첫날 차박 일정에 돌입했다. 우선. 차 뒤좌석을 접어 그 위에 메트를 깔아 잠자리에 필요한 침실을 확보했다. 침실 공간이 생각보다 비교적 넓었다. 두 명 정도는 충분히자고도 남을 공간이다. 차 안에 누워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를통째로 산 느낌이다. 그 느낌을 시작으로 차박 첫 여행이 시작되었다.
주차를 해 놓은 뒤쪽에는 앉아서 휴식의 시간을 보내기 좋은 지붕 있는 벤치가 있고, 그 뒤로 예전 동해시 EXPO행사장으로 사용던1층 건물외부에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다. 어느 정도 차박에 필요한 부분이 채워져 간 셈이다. 몸을 씻을 수 있는 공간 확보만 남아있다. 다행히 피서철이라 해수욕장 내에 유료 샤워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캠핑의 목적은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제일 큰 목적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욕심은 내려놓고 사 먹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해수욕장 주변 식당가에는 특별히 먹을 만한 메뉴가 눈에 띄지 않았다. 휴가지에서 더더구나 혼자 먹을 만한 음식 또한 제한적이다. 치킨집이 건물 벽을 마주하고 두 집이 나란히 영업을 하고 있다. 치킨 한 마리를 포장해서 차가 세워진 뒤편 벤치로 가서 앉았다. 야외에서 먹는 맛이 달랐다. 무엇을 먹어도 맛은 두 배이상이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먹으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혼자 먹는 또 다른 맛이 있다. 별로 먹지 않았는데 빠른 포만감이 찾아온다. 마침,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닭다리 하나를 던져 주었다. 덥석 물고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일몰의 시간이 지나고 주변은 고요의 바다가 되었다. 파도소리마저도귓가에 울림이 없다. 차에 누웠다. 생각했던 이상으로 편안한 느낌이 찾아든다. 이곳으로 오길 잘했다는 판단에 스스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차 안에는 불빛도 필요 없었다. 핸드폰 하나면 잘 시간까지 지루함 없이 시간을 보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