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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의대생 Feb 11. 2023

낯설기만 한 열일곱, 고등학교 1학년

열일곱 #1. 입학식, 그리고 첫 실패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낯설고 힘들다. 몸에 맞지 않는 교복과 갑갑한 마스크, 처음 보는 친구들까지.

심지어 내 열일곱, 2020년은 코로나의 막을 연 해로 하복을 입고 여름에 첫 등교를 했다. 급식실에서는 대화가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칸막이 속에서 밥을 먹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대학에 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내신 시험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중간고사를 치르고도 남았어야 할 날짜에 우리는 겨우 입학식을 했다. 안 그래도 힘든 고등학교의 첫 시작이 이렇다니, 너무 인생 난이도가 빡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개학을 하고 2주도 채 되지 않아 첫 내신 시험, 중간고사를 치렀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다지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날짜에 개학을 하지 못해 6월까지 방학과 같은 하루를 살고 있었고 매일 올라오는 온라인 수업은 잔뜩 미뤄 놓은 지 오래였다. 학교에 한 번 가고 나자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밀려드는 세특 보고서, 수행평가, 자율동아리, 창체동아리, 교내대회 등등을 차치하고 일단 당장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엄청난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나... 어쩌지?'


중간고사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통합과학, 통합사회, 한국사. 총 여섯 과목의 시험을 치러야 했다. 내가 가고 싶었던 의대에 진학하려면 적어도 1점 초중반대의 내신을 만들어야 한다. 즉 모든 과목의 등급이 1-2등급 내외여야 한다는 것이다.


쉬울 줄 알았다.

전교 1등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과목에서 4퍼센트 내에만 들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고1스럽지만 멍청한 생각을 했다. 이건 어렸을 때 공부를 잘했던 학생일수록 주의해야 하는 태도라고 본다.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잘했다면 당연히 대학 진학 목표도 높을 것이고, 실패를 겪었을 때의 좌절감도 커진다. 자신감을 가지는 것? 당연히 좋다. 하지만 자만하면 안 된다. 공부 앞에서는 그 어디에서보다 겸손해야 한다.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몰랐고, 오만하게 공부했다.

그렇게, 첫 중간고사를 망쳤다.

국어는 80점대가 나왔고 등수로 따지면 3등급이었다.

영어는 98점이었지만 2등급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만점이 10명이 넘는다는 말인가?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깎인 2점이라 더 억울하고 눈물이 났다.

통합사회는 풀 때부터 망쳤음을 직감했다. 지문도 읽히지 않았고 설렁설렁 교과서만 읽으며 공부했던 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졌다. 역시 3등급 끝자락이었다.

그나마 중학교 때 선행학습을 했던 수학, 과학 과목은 간신히 1-2등급이었다.


아직 기말고사가 남았지만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고 등급을 계산해보니 1점 후반대를 훌쩍 넘어갔다.

내 꿈이 그대로 스러지는 것 같았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엄마의 얼굴을 보고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기말고사 때 올리겠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내 잘못이었으니까.


고등학교에서는 성적에 마음껏 좌절할 수조차 없었다. 쏟아지는 세특 보고서, 발표, ppt, 교내대회, 각종 동아리도 준비해야 했다. 처음 해보는 모든 활동이 내 대학을 좌지우지한다 생각하니 대충 할 수도 없었고 하루에 3시간도 자지 못했다.


중간고사를 늦게 본 탓에 한 달쯤 뒤 바로 기말고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고등학교는 한 학기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총 두 번의 시험을 치른다. 중간고사를 보면 그 성적에 따라 등수가 적힌 성적표가 배부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등급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등급만 보고 좌절하기는 이르다! 기말고사라는 기회가 남았다. 최종 등급은 수행평가 점수와 중간/기말 점수를 모두 합산하여 산출된다. 중간고사를 못 봤다면 조금만 속상해하고 얼른 일어나자. 기말고사 때 올리면 되니까!

수행평가와 기말고사를 통해 한 등급, 많게는 두세등급까지도 올릴 가능성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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