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2. 첫 생활기록부는 어떻게 채우는 걸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성적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 들어 대학에서는 성적 외에도 '학생부'를 요구하고 있다. 성적만 우수한 학생이 아닌 다방면으로 똑똑한 학생을 뽑고 싶다는 말이다. 여기서 곤란해지는 것은 생활기록부(줄여서 생기부)를 채우는 것이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열일곱살에게는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 많은 활동을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수행평가를 모두 치르는 사이에 틈틈이 해내야 한다. 이것이 요새 입시의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의대 생기부를 만들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완성본을 천천히 살펴보며 느낀 점은 이것들을 1학년 때 알았으면 참 좋았을걸,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열정만 가지고 생기부를 채우려고 하다 보니 효율적이지도, 내실이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입시를 마친 후 느꼈던 학생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점들은 다음과 같았다.
1.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흔히 의대 학생부라고 하면 국어, 영어, 수학부터 한국사까지 세부특기사항과 진로, 행특 등을 모두 의대 관련 내용들로 빽빽하게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나 의대 가고 싶어요'라는 생기부를 만드는 것은 잘못된 건 아니지만 나중에 생기부 전체를 봤을 때 조금 독창성이 부족해 보인다. 수학 생기부에는 CT와 수학의 관련성, 국어 생기부에는 의료 관련 기사, 하다못해 한국사 생기부에 허준의 동양 의료까지 고등학생들이 생각해내는 주제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나도 생기부를 채워 봤기에 크게 공감한다. 난 의대를 가고 싶은데 세특을 의료 관련 주제로 채우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입학 사정관들의 눈에는 이런 생기부만 몇 만장을 본 셈이다. 내 생기부가 '의대' 생기부는 맞더라도 어차피 의대에 지원하는 사람들의 생기부는 다 의대에 맞춰져 있다. 지원자들의 생기부를 모두 읽었을 때 내 생기부가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의대 생기부를 만들려면 내가 이 주제를 생각해 낸 사고의 흐름이 생기부에 드러나야 한다. 예를 들면 화학 세특을 채울 때는 무작정 내가 관심 있는 의학 관련 주제를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내의 수업 내용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과 염기에 대한 내용을 배우고 화장품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산성 클렌징폼과 알칼리성 클렌징폼의 차이가 궁금해졌고 이것이 피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나아가 피부과 의사라는 나의 진로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저 화학과 관련된 피부 의학 주제로 생기부를 채우는 것과는 명백히 다르다.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는 반증이며 그것과 교과서 외부의 관심사를 연결짓는 것만으로도 기억에 남는 생기부를 만들 수 있다.
2. 과도한 진로와의 연결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생기부를 채울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자신의 진로와 연결시키라는 말일 것이다. 물론 자신의 진로와 연결시켜 통일성 있는 생기부를 채우는 것은 효율적이고 결과물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과도하게 진로와 연결을 시키려는 노력이 보인다면 오히려 부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 세특에 그저 영어로 쓰인 논문이라는 이유로 의학 논문을 읽고 그 내용을 적으려고 한다면 앞부분에서 언급한 '수업과의 관련성'이 전혀 없는 셈이다. 생활기록부는 어디까지나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는가, 그리고 수업 내용에서 더 나아가 깊이 있는 학습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이런 경우에는 영어 의학 논문만큼 있어 보이지는 않더라도 수업 내용 속에서 심화 학습을 할 만한 포인트를 찾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그 예시로 영어 본문이나 지문 속에서 모르는 단어를 정리하고 그 어근, 단어의 구성 방식에 대해 공부하는 것 등이 있다. 더 나아간다면 비슷한 어근을 가진 영어 의학용어를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신의 진로와 연결은 시키되, 그것이 억지스러우면 안된다는 말이다.
3.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라.
의대 합격 생기부 예시들을 보면 이게 고등학생 수준이 맞나 싶을 정도로 휘황찬란한 생기부들이 많다. 대학과 연계하여 수준 높은 실험을 하는가 하면 고가의 장비들을 활용해 실험 및 논문 작성을 한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 평범한 일반고의 학생이었고 우리 학교의 실험실 장비는 무척 열악했다. 선생님들께서는 실험을 도와주실 열의가 없었고 실험을 함께할 친구들도 몇 없었다. 이것이 흔한 일반고의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실험 장비가 부족해서, 함께할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없어서 생기부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저 핑계일 뿐이다. 내 학생부 활동은 내가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하고 추진력을 가져야 한다. 한 예시로 내 경험은 아니지만 한 일반고에서 세균 배양 실험을 하고 싶은 학생이 있었지만 실험실에는 세균 배양기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학생은 과학 잡지에서 본 지식을 활용해 배양기 대신 저렴한 알 부화기를 구매, 배양기와 비슷한 온도를 맞추어 놓고 밤새 지켜보며 세균 배양 실험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자신이 하고 싶은 실험이나 연구가 있다면 먼저 과학 선생님께 찾아가 방과후나 주말, 실험실을 이용할 수 있는지 허락을 받고 없는 장비들은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해내면 된다. 멋지고 값비싼 장비가 없더라도 부족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또한 입학 사정관들의 눈에는 무척 긍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내 경험을 소개하면 독창적인 생기부를 만들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흔히 나오는 실험이 아닌 스스로 궁금한 점을 찾고 배운 것들을 활용해 실험을 설계했다. 그 과정에서는 여러 논문을 참고했고 실험 결과를 해석하기 어려울 때는 논문의 저자인 교수님들께 메일을 많이 보냈다. 메일 여러 개를 보내면 적어도 한 분의 교수님께서는 시간을 내어 답장을 해 주셨다. 이렇게 고군분투한 모습이 오히려 좋게 평가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리해보면 생기부를 채울 때 중요한 점은 수업 내용과 교과서에서의 관련성을 찾을 것, 그리고 독창적인 생기부를 위해서는 스스로 발로 뛰며 부족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추가적인 팁으로는 수행평가나 수업 중 실시되는 간단한 활동도 성의있게 제출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일반고에서는 선생님들께서 세부특기사항을 작성할 때 수행평가의 내용도 참고해서 작성하기 때문에 바쁘고 급하더라도 간단한 수업 활동 모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번 내용이 전국의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