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병 일기 1. 전조증상
전 두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갑자기 작가가 바뀌었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의대에 입학해 정신없이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자연스레 글을 쓸 시간도, 정신도 부족했던 것 같아 호기롭게 시작했던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럽다. 그래도 이렇게 어느 날 다시 글자를 적기 시작한 것은 내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스무살, 한창 꽃다운 나이에 나는 크론병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진단받았다.
(1) 과거부터 이어져 온 몸상태
난 원래부터 장이 좋지 않았다. 우유를 먹으면 바로 설사를 하기도 했고 자극적이나 맵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속이 좋지 않았다. 그게 극에 달한 건 스트레스로 가득했던 고3때였다. 밥을 먹기만 하면 배가 많이 아팠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배가 아프면 엎드려서 고통이 사그라들때까지 버티는 것이 일상이었다. 통증이 있었으니 당연히 음식도 잘 먹지 못했고 30키로대까지 몸무게가 줄었다.
밥 먹는 것이 무서워지기도 했다.
학교를 걸어다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모두 깜짝 놀라며 '어디 아픈 것 아니냐'고 물었다.
친한 친구들은 이 정도까지 복통이 심하다면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진이라도 받아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했다. 그렇지만 나 자신도, 가족도 별 일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내과에서 진경제, 진통제 등등 증상 완화용 약만 계속해서 처방받으며 수험생활을 버텼다. 고3들은 원래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으니 역류성 식도염이나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같은 흔한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2) 대학 입학
무사히 수험생활을 끝마치고 꿈꾸던 의대에 합격했다. 그때에도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지만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고 일상도 평화로워지면서 괜찮아졌던 것 같다. 그래서 입학하자마자 신입생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음주를 신나게 즐겼다. 심할 때는 일주일에 6번씩 술을 마셨고, 부모님을 닮아서인지 주량도 센 편이라 많이 마시기도 했다. 즐겁게 대학을 다니며 다시 원래 몸무게로 돌아오고 멈췄던 생리도 시작하는 등 씻은 듯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3) 진단, 그 직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일이 하나 생겼다. 고등학생 때처럼 다시 복통이 생겼지만 그때처럼 스트레스성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가벼운 복통을 안고 첫 학기 종강을 했고 첫 방학에 여행 계획도 잔뜩 세우며 들떠 있었다.
......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심각한 복통도 함께 찾아왔다. 술은 고사하고 일반적인 식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아파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살도 다시 심각할 정도로 빠져 10분만 걸어도 어지러웠고 진단 직전에는 먹은 것을 모조리 게워내는 일도 잦았다.
이 정도면 병원을 안 간 것이 이상한 것 아니냐, 싶기도 할 것 같다. 희귀병이라는 생각을 꿈에도 못했던 나는 애꿎은 산부인과만 다니며 초음파도 보고 호르몬제를 먹기도 했다. 그래도 복통은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식사를 하면 밀려오는 엄청난 복통에 밥도 먹지 못하고 죽이나 스프로 대체하며 대학병원 예약일을 기다렸다. 남들은 즐거워하는 식사시간이 두려워졌다.
살은 35kg까지 빠져 뼈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입시 이야기와 수험생들에게 도움을 주려 시작한 글쓰기에 갑자기 등장한 투병 이야기가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보도 흔치 않은 병인 만큼 단 몇 명의 사람들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시기의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 씁니다. 그냥 이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의 시선으로 봐준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