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병 일기 3. 의료보험의 아이러니
크론병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진단받은 뒤 여러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그 중의 하나가 희귀병이라는 이유로 의료보험과 산정특례 등록을 통해 80%를 감면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8주마다 한 번씩 맞아야 하는 주사제의 가격을 알게 된 이후 의료보험이 정말 고마웠다. 100만원이 넘어가는 신약을 두 달마다 한 번씩 맞아야 하고 대부분 생애 내내 주사제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그 총액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워낙 큰 금액의 의료비를 지원해서 그런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기준이 많았다.
1. 확진 후 최소 두 달 정도는 신약(주사제)을 사용할 수 없다.
내 경우를 비롯해 대부분의 환우들은 크론병이라는 질환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여러 병원을 거친 이후에 확진을 받게 된다. 따라서 확진 당시에는 염증이나 통증이 가장 심하고 약으로도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확진 당시 0-0.5가 정상인 염증 수치가 13이 넘어갔으며 대장 속 염증 수치는 정상 수치의 30배였다. 도저히 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도 안타깝지만 바로 주사제를 쓰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 의료비 지원 없이 총액 모두를 스스로 내야 된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8주 동안 쓸 수 있는 약을 전부 쓰고도 증상이 심각하여 주사제를 처방했다'라는 증거가 있어야 산정특례 적용이 된다고 했다. 나는 당시 체중이 15kg 넘게 빠져 걸어다니기도 힘든 상태였고 복통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했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 독한 항생제를 비롯한 여러 약을 한 뭉치씩 먹었지만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장난으로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죽으면 썩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항생제의 부작용으로 하루 종일 속이 울렁거려 하루에 몇 번씩 구토를 하기도 하고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몸은 말랐는데 얼굴은 퉁퉁 붓는 일이 있기도 했다. 이 기간이 확진 이후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지켜보다 못한 어머니는 주사제를 바로 쓸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해 대구까지 찾아가셨다. 칠곡경북대병원의 한 교수님께서는 크론병을 전문으로 치료하고 계셨고 내 상태를 보시고는 당장 주사제를 써 주신다고 했다. 이후에 의료보험상 문제가 생긴다면 교수님의 사비로 해결해 주신다고까지 말씀하셨다. 그 교수님께서 내가 사는 곳의 담당 교수님께 개인적인 연락을 통해 주사제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나는 드디어 신약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주사제를 맞자마자 그 다음날부터 바로 몸상태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다. 이게 현대의학의 힘인가, 싶었다.
2. 만 19세 미만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주사제의 종류가 한정적이다.
주사제 치료는 그 효과가 확실하고 빠르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도 여러 종류의 주사제가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 임상에서 쓰이고 있는 주사제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한 종류의 주사제에 내성이 생긴다면 다른 종류의 주사제를 쓰는 수밖에 없는데, 현재 개발된 모든 주사제에 내성이 생긴다면 이제 더 이상은 쓸 약이 없게 되는 것이다. 내성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함께 복용하기도 한다. 나는 불행 중 다행으로 20살 때 진단을 받았지만 크론병 환우 카페를 보면 중고등학생부터 어리면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많이 보인다. 이 아이들은 주사제도 쓰지 못하고 약으로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소년들은 몇 가지 주사제밖에 선택지가 없는데, 어린 나이에 주사제를 쓰다가 내성이 생겨 버리면 아예 주사제를 쓰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크론병을 진단받아 증상은 심하지만 주사제를 쓰지 못하고 버티는 모습을 보면 무척 안타깝다.
희귀난치병을 위한 산정특례 제도는 의료비 부담을 크게 덜어주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늘 고마운 제도라고 느낀다. 하지만 여러 제도가 그렇듯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고 그것들로 인해 환우들은 고통받는다. 나는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 환자들을 더 우선으로 생각하며 돕는 의료진들을 만났다. 그 분들은 어째서 그렇게 환자들을 위해 힘쓸 수 있는 걸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왜 불합리한 산정특례의 조건들은 없어지지 않는 걸까? 예비 의료인으로서 환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내가 미래에 환자들을 위해 그 분들처럼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지금 이 순간도 작년 이맘때쯤의 나처럼 주사제를 쓰지 못하고 버티고 있는 환우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훗날 의사가 되었을 때 나를 도왔던 그 교수님처럼 고통받는 환자들의 구원이 될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