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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맑음 Oct 18. 2023

소심하지만 할 말은 한다!

단, 기분 상하지 않게.

지난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는 꽤 소심한 편이라 친구들에게 할 말을 제대로 못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엄청 조용하진 않았지만, 나름 밝고 쾌활한 성격을 가진 그저 순한 아이였다.


7살 때인가 엄마를 따라 지인집에 구역예배를 드리러 간 적이 있는데, 어른들은 거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그 집 아이와 난 방에서 따로 놀고 있었다.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다 어떤 인형을 만지는 순간, 그 아이는 "내 거 만지지 마!" 하며 순식간에 내 뺨을 때렸다. 난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그 아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뺨 때리는 소리가 컸는지 어른들이 달려왔고, 엄마는 그 아이에게 친구를 때리면 어떡하냐고 다그친 후 날 데리고 그 집을 나와버렸다.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넌 뺨까지 맞고 가만히 있니, 왜 때리냐고 소리라도 지르지!" 라며 혼을 냈다. 아마 그 시대에 오은영 박사님이 계셨다면 "친구가 갑자기 때려서 많이 당황하고 속상했지? 하며, 아이의 감정을 먼저 살펴봐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시대엔 지금처럼 흔한 육아서조차 없었으니, 오히려 엄마가 더 속상한 마음에 나한테 화를 낸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나는 할 말도 못 하고 자기주장도 강하지 않은 아이였다. 친구들과 놀 때도 주도적으로 이끄는 친구가 있으면, 그냥 그 친구가 하자는 대로 따라 놀던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할 말을 잘하지 못하는 건 소심한 성격도 있지만 자신감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이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착하다는 말도 듣기 싫었다. 착하다는 것은 즉 만만하다는 것이고, 만만하다는 것은 곧 호구가 되는 세상이니까. 그리고 '할 말을 제때 하지 못하면 나만 손해인거구나'라는 것을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만의 신조까지 생겼다.



좋은 게 좋은 거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게 되면 덩달아 내 기분도 불편해지기 때문에, 누구나 남들에게 좋은 말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매번 좋은 일만, 좋은 상황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좋은 게 좋은 거지만 흘러가는 상황이,

때론 이건 누가 봐도 아니라 생각된다면 그땐,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또한 아이를 낳고 아줌마가 되고 나니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내 할 말을 부드럽게 전하는 경험치가 쌓이게 되었다.







#경험 1. 프로환불러의 환불방법


지난 연휴, 장을 보러 동네에 있는 과일/채소가게에 갔다. 이 가게는 과일과 채소를 당일마다 들여와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지난번에 산 거봉이 달고 맛있었기에 이번에도 거봉을 한 박스 사고, 싱싱해 보이는 무도 하나 샀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무생채를 해 먹으려고 무를 잘랐는데 웬걸, 멀쩡한 겉과 달리 속은 반이나 썩어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반은 버리고 나머지 반으로 무생채와 어묵국을 끓여 먹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거봉을 먹으려고 박스에서 꺼냈는데, 거봉이 생각보다 싱싱하지 않았다. 거봉알이 단단하지 않고, 물컹물컹했으며 씻으면서도 저절로 후드득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저번처럼 맛은 달겠지 하며 먹어봤는데 맛도 맹탕이다. 거봉을 좋아하는 남편만 겨우 몇 알 먹고, 나와 아이들은 먹지 않았다. 내일 그냥 믹서기에 갈아서 주스나 해 먹어야지 했는데, 다음날 남편이 그 거봉을 먹어서인지 회사에서 배가 좀 아팠다는 것이다. 결국, 씻어놨던 거봉의 사진을 찍어 과일가게로 갔다.




난 가게로 들어서며,
물건을 사러 온 듯 자연스레 만만한 양파를 집어 들고 사장님께 다가갔다.

 

- 안녕하세요, 사장님. 지난번에 거봉을 사서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 아.. 그랬나요?...(사장님은 상당히 무뚝뚝하신 편이다.)

- 그래서 엊그제도 거봉을 사갔는데, 이번 거봉은 알도 많이 무르고 맛도 맹탕이더라고요. 그리고 좀 상한 것 같아요.

- 아이고, 그래요?

- 네! 무도 싱싱해 보여서 같이 샀었는데, 잘라보니 속은 다 썩어서 반은 버렸어요.

- 아.. 그랬군요.

- 제가 여기 자주 오는 단골이라 아무래도 말씀을 드리는 게, 사장님도 물건 들여오실 때 도움이 되실 것 같아 일부러 말씀드려요.

- 네에. 그때 얼마에 사가셨나요?

- 18,000원에 샀었어요.

- (갑자기 점포 안을 두리번거리다 대왕 샤인머스켓을 집어 들고 걸어오신다) 정말 죄송해요. 이거라도 하나 가져가세요.

- 앗! 감사합니다.(그리고 키오스크에 가서 양파를 계산했다)



물론 처음 구매했던 금액만큼 환불받진 않았지만, 난 만족하고 돌아왔다.







기분 상하지 않게 내 할 말을 잘 전하려면,

말의 유연성과 적정한 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① 분위기를 살핀다 : 환불하러 온 사람인 것처럼 티 내지 않는다.

→ 물건을 사러 온 듯, 자연스레 양파를 집어든 나의 모습처럼.


② 先 칭찬, 後 불만을 이야기한다 : 불만부터 말하면 상대방은 처음부터 기분이 상할 수 있다.

→ ex) "지난번에 거봉을 사서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제가 여기 단골이라 말씀드려요"


→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도 덧붙인다.

    ex) "물건 들여오실 때 도움이 되실 것 같아 일부러 말씀드려요"


③ 적정한 선을 지킨다  : 내가 손해 본 금액만큼 100% 보상받으려 기대하지 않는다.

거봉을 18,000원에 샀는데 왜 그 가격만큼 환불해주지 않느냐 따지고 든다면,


→ 나의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땐 서로 기분만 상하고,

→ 결국 난 진상고객으로 남아 그곳이 불편해질 수 있으며,

→ 다른 곳보다 저렴히 물건을 샀던 이 가게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 이것 또한 나에게 손해.


과일과 야채는 먹어보지 않는 이상, 사장님도 겉모습만 보고 맛을 다 수 없기에,

나 나름대로 적정한 선을 지키고 협의(?)를 본 것이다.


물론, 18,000원짜리 거봉을 가지고 이렇게 까지 할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성격의 차이일 수 있지만, 난 이렇게 해결(?)한다. 그리고 주부로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은근히 많다.








#경험 2. 동네언니에게 할 말 하는 법


동네에 자녀가 넷인 엄마가 있었다. 아이가 넷이라 그런지 아이 둘 키우는 나보단, 양육에 있어서 상당히 자유로웠다. 막내가 우리 아들과 동갑이었는데, 그 당시 8살인데도 집 앞 놀이터에 혼자 나와 자유롭게 놀던 아이였다. 다만, 좀 위험하게 놀아서 동네 엄마들도 '아이고, 위험하다. 조심히 놀아야지', '그렇게 하면 다친다'라고 말해줄 때가 많았다.


어떤 날은 떡볶이를 사 와 친구랑 놀이터 벤치에서 먹은 후, 치우지도 않은 채 그대로 가버렸다. 벤치엔 떡볶이 국물과 쓰레기가 뒤엉켜 있었고, 결국 그 자리에 있었던 나와 엄마들이 같이 치웠다. 물론 아이이기에 그럴 수 있지만, 그 아이의 엄마에게는 꼭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뒤, 아이의 엄마가 오랜만에 놀이터에 나왔고 난 지난번 일을 말해주었다.


- 언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 응, 잘 지냈지. 놀이터는 여전하네~

- 네. 이 시간이면 북적북적하죠. 언니 선글라스는 매번 멋지네요.
  (선글라스가 엄청 많은 언니다)

- 나는 눈이 잘 부셔서, 선글라스 없으면 안 되잖아.

- 그렇죠. 아, 언니. 저번에 아무개가 놀이터에서 너무 위험하게 놀더라고요. 다칠까 봐 겁나요. 아무개한테 말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 그랬어?

- 네. 그리고 혼자 떡볶이도 사다 먹던데요?

- 응. 먹고 싶다 길래, 친구랑 사 먹으라고 돈 줬어.

- 그러니깐요, 아무개 혼자서도 잘 사 먹고 대견하네요.

- 막내라 그런지 형하고 누나 하는 거 보고 뭐든 혼자 잘해.

- 근데, 그날 놀이터에서 먹고 쓰레기는 그대로 두고 갔어요.

- 그래? 나는 그런 줄도 몰랐네.

- 그냥 엄마들이랑 같이 치웠어요. 대신 아무개한테는 잘 얘기해 주세요.

- 그래. 아이고, 미안하네. 아무개한테도 다음부턴 그러면 안 된다고 잘 말할게.




이렇게 대화가 끝나고 이 모습을 지켜봤던 다른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 너는, 이런 얘기도 어쩜 기분 상하지 않게 잘하니?


- 그랬나요? 그냥... 엄마가 없을 때, 아이가 어떻게 노는지 알려는 줘야 할 것 같아서요.


- 나도 알려는 줘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남의 자식에 대한 참견일 수 있잖아. 근데 넌 기분 상하지 않게 요리조리 말을 잘한다.



여기서도 난 말의 유연성을 가지고 웃으면서, 선칭찬 후 불만(?)을 이야기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도, 적당히 웃으면서 말하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그렇다고 너무 웃으면 역효과가 날 수도...)


이처럼 세상을 살다 보면, 주변 사람들과 불편하지만 꼭 해야 하는 말,

또는 내 손해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말들이 있다.


서로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라도,

정말 필요하다 생각된다면!

말의 유연성을 가지고,

적정한 선을 지켜가며,

지혜롭게 할 말은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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