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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맑음 Oct 13. 2023

멍 때리고 싶은 날

날씨에 따라 변하는 나의 기분이여 제발 온전해주오.


하루의 아침을 아이들 사랑해 주기로 시작한다. 먼저 잠에서 깬 아들과 딸이 안방으로 찾아와 사랑해 달라며 각각 지정된 팔로 안긴다. 왼쪽 팔에는 딸이, 오른쪽 팔에는 아들이 안겨 엄마의 체취를 맡는다. 밤새 엄마의 체취가 그리웠니? 나는 나의 냄새를 잘 모르겠는데, 아이들은 엄마 냄새가 참 좋다며 품에 안겨 킁킁거린다. 어릴 적 난 냄새보단 엄마의 품 자체로 엄마를 기억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냄새도 함께 기억하려나보다.



이렇게 아이들을 사랑해 주고 거실로 나오니 거실이 어둡다. 커튼담당인 딸이 커튼 젖히는 걸 깜빡한 모양이다. 대신 커튼을 열고 창밖 하늘을 보니, 오늘은 날이 너무 칙칙하고 흐리다. 기분이 살짝 안좋아질랑말랑한다.


분주하게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 등원까지 완료 후, 환기도 시킬 겸 거실 베란다 창을 열었다. 그리고 거실테이블 나의 지정석에서 앉아 또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린다. 흐린 날씨에 덩달아 내 기분도 점점 흐려지는 느낌이다.




열어둔 창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톡톡톡 토도도독" 이상한 소리도 들린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창밖을 자세히 보니 딱따구리가 바로 앞에서 나무를 찧고 있다. 안 그래도 기분이 별로였는데 나무를 찧고 있는 딱따구리를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우울했던 기분이 살짝 잡힌다.



하지만 이내 딱따구리도 곧 날아가버리고, 집안에 적막감이 돈다. 아, 라디오를 켜지 않았구나. 우리 집은 TV가 없기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먼저 라디오를 켜고 주방으로 향한다. 그런데 오늘은 깜빡했구나. 열어둔 창 사이로 새소리와 딱따구리가 그 적막감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난 이제야 적막감을 알아챘다.


오늘은 왠지 흐린 날씨로 인해 기분도 좋지 않고, 하루종일 멍만 때리고 싶은 날이다.

그러면서 이 아침에 난 왜 기분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어제 아이들 운동회로 인해 하루종일 서서 구경하느라 피곤했나?


- 아님, 오랜만에 실내자전거 운동을 해서 그런가? 겨우 20분 탔는데?


- 아님, 시댁이야기로 글을 다 써놓고 발행 직전 혹시나 남편에게 말했더니, 역시나 "우리 집 이야기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예민한 남편 때문에?( 글 하나를 버렸네...)


- 아님, 평소 남편에게  ①음쓰버리기 ②아이들 텀블러 씻기 이렇게 딱 두 가지 집안일만 맡기는데, 유독 오늘 텀블러를 보자마자 "이거 아직 안 씻은 거야? 아, 오늘 좀 피곤한데..."라며 궁시렁거린 남편 때문에?

(안그래도 오빠 니 힘들까 봐 음쓰도 오늘은 내가 버렸다고!) 마음의 소리입니다.


- 아님, 밤새 꿈을 3개나 연달아 꾸느라 잠을 푹 못 잔 것 때문에?


사실 이 모든 게 이유일 수 있지만, 그래서 난 오늘 더욱 화창한 날을 기대했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이기에,


어제의 피곤하고 짜증 섞인 마음들을 오늘의 날씨가 씻겨주길 바랐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마저도 나의 기분을 달래주지 않는다. 오늘 이 칙칙한 하늘이, 그래서 우울한 이 아침이

그냥 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다.


배우 강하늘도 집에서는 벽 모서리와 모서리 사이 한 구석을 하염없이 응시하며 멍을 때리는 게 일상이라 했다. 그래서 나도 '멍 때리고 싶은 날은 정신이 들 때까지 그냥 멍을 때리자!'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냥 나가자!



공간이 바뀌면 기분도 전환된다고 한다.

그것이 공간의 힘이겠지.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우울하고도 신나는 '자우림'의 노래와 함께, 밖에 나가 산책하며 좋지 않은 나의 기분을 환기시켜야겠다.


산책 후 나의 남은 오후는 이 사진처럼 기분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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