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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이 뭐길래

사과 한 조각

by 글지으니


생선 대가리가 맛있다는 말이 "어두육미 맞지!" 하고 남편에게 물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니!"라고 남편이 말했다.

"엄마들이 그랬잖아!"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 줘도 안 먹는다!"

맞다. 생선 대가리는 탕을 끓일 때 감칠맛을 나게 하지만 발라먹기도 힘들고 먹을 것이 별로 없다. 예전에는 소금기 때문에 짭짭한 맛이 나서 맛일 수 있다. 갈비를 발라먹는 거나 가시를 발라 먹는 것 하고는 좀 다르다. 그러니 엄마들이 한 말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엄마들은 그렇게 생각하니 맛일 수 있었다. 생각을 바꾸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산모들에게 이쁜 과일만 먹고 이쁜 생각만 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옛날에 양반의 마님이나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복숭아도 벌레 먹는 것이 맛있다고 하면서 나는 발라 잘 먹었다. 하지만 산모들은 좋은 것만 생각하고 상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탈이 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약이 태아에게 안 좋으니 상한 음식 때문에 두드러기로 가려워도, 설사를 해도 약을 못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엄마의 배속에 있는 태아는 가장 작은 존재로 소량의 것도 반응도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삼을 태아 때 먹는 것과 태어나서 한 살 때 먹는 것이 다르다고 했다. 인삼을 먹고 엄마에게 영양을 주는 것 같지만 그 영양이 고대로 태아에게 가서 그런 것 같다. 태아는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엄마가 먹는 족족 빨아들이며 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량의 음식도 태아에게 영향을 주는 데 모든 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는 얼마나 치명적일까? 지금에 와 생각하니 생선 하나보다 과일 한쪽보다 마음이 편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신혼부부 때는 여러 가지 환경이 바뀌고 그것을 맞춰나가는 시기라 마음이 불안정할 때이다. 이런 것을 다 겪으며 생선 대가리가 맛있다고 한 우리 엄마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어제 아침에 사과 한 개를 씻으면서 '맛이 있어야 될 텐데' 하며 잘라 놓았었다. 남편이 사과를 먹다 "아니, 이렇게 맛없는 사과도 있냐!"라고 했다. 나는 흠집 사과인데 이것은 흠집은 없고 사과가 덜 익은 듯 부사 같은데 아닌듯해도 씻고 잘라 놓았다. 내가 보기에도 덜 맛있어 보였지만 사과 맛이 사과인데 했다.


나는 아침은 간헐적 단식을 하려고 레몬 수만 먹는다. 그런데 남편이 사과가 맛없다고 하니 사과 한 조각을 먹어봤다. 부사가 잘 안 익었는지 단 맛이 잘 나지 않아 덜 맛이 났다. 그래도 아삭아삭 사과니 나중에 내가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랬더니 새벽에 들어온 아들은 치킨을 먹다 잠이 들면서 느끼했는지 일어나 냉장고에 있는 맛없는 사과를 집어먹고 잤다.


가끔 아들도 사과를 한쪽 먹다 남기고 가면 남편은 쥐새끼같이 먹다 놓지 말라고 잔소리한다. 부전자전인가 먹다가 남편도 사과를 접시에 던지길래 아들 같다 했더니 다시 한쪽을 먹었다. 나는 아침에 가끔 버리는 과일이나 남긴 과일을 치우려고 먹곤 한다. 나는 음식을 청소하는 기계가 다 되었다.


옛날 어머니들처럼 남은 잔반을 치우다 보니 살이 쪘다는 말이 그냥 웃으며 들었지만 그럴 수 있다. 엄마들은 아깝다. 돈도 아깝지만 그 음식을 사서 다듬고 만들기까지의 수고가 아까워서도 먹는다.


갑자기 내가 불쌍해진다. 동서는 김치를 썰다가도 밑동은 버려야지 먹기라도 하면 남들도 그렇게 자기를 대우받는다고 했었다. 어두육미라는 말도 있지만 울 어머니와 시어머니는 생선 대가리만 드셨는데 무시당하고 사시지는 않았다. 조금 상한 것을 먹는다고 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닐 거다. 자신을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존중이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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