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면, 비로소 보이는 것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에서도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무엇을 하면서 그 의미를 느끼는지를 찾으라고 했다. 나도 처음에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찾고 싶어서 "나를 찾는 글쓰기"를 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면서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면서 그동안 나를 잊고 살았던 삶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영혼을 갈아 넣으며 살려고 발버둥 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미움받을 용기>를 읽어도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할 용기가 없었다.
환경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에 그렇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미움받을 용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한때는 용기가 나의 가치관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용기라는 것은 머리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샘 솟아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용기를 내어 말해도 상대방이 받아 드리지 않는다는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가랑비에 옷이 적듯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나를 이해하듯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많은 시간과 싸웠었다. 아직도 미움받을 용기가 많지 않지는 "나를 찾는 글쓰기"를 하면서 꾸준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만들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러던 나는 두 번째 책을 생각하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을 다시 읽으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 또 무엇을 하면서 그 의미를 느끼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엄마로,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으로 크고 작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평생 엄마로만 살뻔했다>를 쓰면서 그동안 내가 했던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을 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보다 더 사랑했기에 나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깨닫고 있다.
첫 번째 책을 쓰고 그렇게 <미움받을 용기>를 내려고 했지만 아직도 나는 그 용기와 싸우고 있다. 하지만 내가 옳은 것보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알기에 그것과 사이좋게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유치원 아이를 돌보며 내가 유치원에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들도 엄마고 선생님이지만 나는 그것에서 진주와 같은 보석 같은 의미와 가치를 보게 되었다. 내가 옳은 것보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다 보니 그 보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보석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누군가가 들어주고, 내 존재를 인정해 주고,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큰 아들이 엄마의 말에 늘 경청해 주고 공감하면서 엄마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돌보는 유치원 아이는 내가 엄하게 말하면 "죄송합니다!' 작게 말하다가 어제는 나를 쓰담쓰담 만져주었다. 어제 자면서 나는 아이가 눈물 나게 사랑스러웠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에서는 지금 내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자비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큰 아들처럼 내 말에 경청하고 공감해 주고, 유치원 아이처럼 쓰담쓰담 어루만져주는 것이 나에게는 자비행이라고 생각했다. 큰 아들, 작은 아들에게서 유치원 아이에게서 나는 배웠다. 내가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청과 공감과 위로를 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