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여자
주말이라 하얀 눈이 내린 한라산을 보러 가기로 했다. 겨울이면 눈 덮인 한라산은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요사이 눈이 내려 한라산에 눈이 쌓였다. 나는 아침에 책 읽고 글 쓰다 보니 일요일에 무엇을 할지 생각이 없었다. 남편은 늘 친구들과 오름을 가는데 오늘은 가지 않아 나와 함께 버스로 눈꽃 구경이라도 가자고 하며 버스 편을 알아보았다.
나는 천백고지에 눈 꽃구경을 가는 것보다 어리목 어승생악 정상에 가면 상고대도 보고 한라산도 보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라산 국립공원으로 가기 전 남편에게 아점으로 떡 만둣국을 해주고 나는 아직 마치지 못한 글을 마무리하고 황금향 오렌지를 먹으면서 가제 눈이 되었다. 남편은 빨리 준비하지 않는다는 성화에 내 눈이 가제처럼 남편 눈치를 보며 귤과 떡볶이를 먹고 출발했다.
요새 학교 선생님 차를 얻어 타지 않아 학교에서 버스정류장에 올라다니다 보니 허벅지에 근력이 생겼는지 어승생 오름이 가파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면서 빨리 가지 못했다. 나는 뚜벅뚜벅 걸어 다니다 보니 어승생 오름을 한 걸음에 올라갈 수 있어서 "빨리 좀 갈게요"말하고 나면 중국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현지인과 한국인 관광객보다 외국인이 눈 덮인 산을 찾아왔다.
눈 덮인 산이라 아이젠이 없이 올라가는 관광객을 보며 다칠까 봐 불안했다. 그래도 다행히 길을 따라 울타리 줄이 만들어져 있어서 줄을 잡고 엉금엉금 걸어 올라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리고 내려오는 입구 쪽에는 길을 따라 만든 줄이 없었다. 그래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와야만 했다.
오름을 거의 다 내려오고 있었는데 내려오다 한 젊은 아가씨가 단화 운동화라 미끌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집고 가던 스틱 지팡이를 하나를 빌려주고 내려가서 주라고 했다. 그리고 내려오려는데 또 그 아가씨가 잘 내려오나 싶었는데 못 내려와서 내 아이젠 한 개를 벗어 신겨줬다. 그 사람은 더듬더듬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중국인 같았다. 다 내려와서 나는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싱가포르에서 왔다고 했다. 싱가포르는 사계절이 따뜻한 나라라고 하며 서툰 영어로 말을 했다.
나는 남편에게 가서 외국인에게 스틱과 아이젠을 빌려줬다고 했더니 나보고 국민 외교관이라고 했다. 오늘은 바람도 안 불어서 설산을 오르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좀 일찍 계획을 세웠다면 어리목으로 한라산 중턱에 올라갔다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저녁에 글을 쓰며 다음날 하루를 미리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눈 덮인 한라산을 한 번 더 아들과 가 볼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