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

<오십에 길을 나선 여자>을 읽고

by 글지으니


1% 행동심리학자 교수님의 배려로 실천 명언산책 시즌4를 3월 1일부터 21일간 참여하게 되었다. 첫날은 "데드라인"에 대한 질문이 주어졌다. 나에게 누군가에게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공개선언을 하라고 했다.


나는 명언 산책을 아침에 하고 조안 앤더스의 <오십에 길을 나선 여자>을 읽고 브런치에 글을 적기로 했다. 일요일에 남편은 친구들과 낮에 오름 약속이 있어서 11시쯤에 나는 밥을 차리고 대학생 아들을 깨웠다. 나는 아들이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아침 몇 시까지 일어날 것인지 데드라인을 세우라"라고 했다.


남편은 "데드라인이 뭔데?'하고 물었다. 나는 교수님이 말한 데드라인에 대한 글을 읽고 그대로 이야기했다.


데드라인(Deadline)이란 말은 미국 남북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유래했다. 수용소 울타리 안쪽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 어두고, 포로가 이 선을 밟거나 넘으면 초병이 즉시 사살했기에 '죽음의 선(Dead Line)'이라 불렸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불규칙적인 습관을 위해 오늘 오후 10시까지 몇 시에 일어날지 문자로 주라고 했다. 아들은 밥을 먹다 "7시 반!"이라고 말해줬다. 나는 "내일부터 7시 반에 나는 너를 깨울게!"라고 했다. 그동안 아들의 불규칙적인 수면 때문에 엄마로 걱정이 많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 데드라인을 지킬 것인지 그것이 또 걱정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오십에 길을 나선 여자> 책 한 권을 8시까지 읽고 글을 쓰기로 했었다. 나는 40분을 타이머를 맞추면서 책을 읽는데 20~22 페이지를 읽었다. 그렇게 나는 낮에 졸기도 하고 전화통화를 하기도 하면서 8시간에 걸쳐서 223페이지를 다 읽었다. 어제 60페이지를 읽어서 3시간을 줄였다. 이렇게 책을 오래도록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빨라진다고 하던데 나는 정독해서 읽는 것을 선호해서 그런지 아직도 느리게 읽는 것이 좋다.


조안 앤더스의 <오십에 길을 나선 여자>는 남편이 수백 마일 떨어진 일자리로 이사를 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조안은 함께 가지 않는 결정을 하게 된다. 조안은 남편의 일방적인 말에 별거를 선택하면서 수많은 시간 동안 홀로 생활을 해나가는 여자가 된다. 그 길이 오십에 길을 나선 여자가 된 것이다.


논픽션이지만 소설처럼 감정에 대해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읽으면서 감탄했다. 2006년의 오래된 책이지만 미국 여성 부문에 최고의 스테디셀러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도 결혼으로 여자는 자신을 위한 삶이기보다 아내와 엄마의 삶을 살다 1년 동안 별거를 하면서 오십에 자신의 길을 찾는 시간을 글로 썼다.


나도 오십에 나의 길을 찾으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몇 번이나 이혼을 결심했는지 모른다. 나도 조안처럼 모험심은 많지만 아직도 혼자 섬에 가거나 며칠 섬에서 지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활하기 위해 생선가게, 조개를 깨는 것을 보며 혼자 있는 것보다는 일이 더 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생활하기 위해 생선을 팔거나 조개를 잡으면서 허술한 자신을 받아들이며 씩씩하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자신을 찾으며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생활하기 위한 일들과 일상을 덤덤히 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많이 느꼈다.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살아야 해요. 어떤 경우든 그러지 못하면 죽은 것이 나 다름없어요. 변화를 원하면 행동해야 해요. 우리가 무슨 말을 하건 그걸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한 푼의 가치도 없어요."라고 조안 앤더스의 <오십에 길을 나선 여자>에서 말했다.


나도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원했다. 그렇게 나는 그럴 행동으로 옮기는 작은 행동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되었다. 나도 오십에야 나를 찾으며 내 삶의 데드라인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쳤던 시간이 30년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 명언 산책에서 "데드라인"이라는 질문을 받으며 내 인생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 데드라인을 지키려고 그동안 나의 한계를 시험하면서 30년이라는 시간은 애를 쓰며 살았다. 그렇게 내가 썩어고 녹아지면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지켰다.


결혼으로 나로 살기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기에 많은 상처가 생겨도 참아내며 데드라인을 지키려고 했다. 남편도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많은 애를 썼을 것이다. 남편이 그렇게 애를 쓰고 살았지만 걱정하던 남편의 은퇴가 현실이 되면서 결혼 30주년도 빛바랜 종이와 같았다.


그래도 남편은 30주년 기념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하루가 지나고 꽃과 케이크와 와인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남편은 "30년 동안 잘 살아줘서 고맙고,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했다. 그동안 나는 남편에게 이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지키며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와인 때문인지 남편이 나에게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는 이 말 한마디, 그리고 지금까지 나만을 사랑해 준 남편이 고마워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나에게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계절이 지나갔는지 모른다. 그렇게 계속되는 계절이 지나면서 얼었던 마음도 봄처럼 따뜻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으로 나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나를 잊고 산 줄 알았지만 나는 그 데드라인을 목숨처럼 지키려고 했던 것이 나를 지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은퇴는 예전 신혼 때처럼 막연한 희망을 꿈꾸게 하지는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고 땅에 발을 밟고 힘차게 걸어가려는 의지를 갖게 해 주었다.


신혼 때처럼 막무가내로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라는 한 송이 꽃을 다시 바라보며 30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십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나는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오십에야 나도 길을 나섰고 남편이 은퇴를 하면서 다시 힘든 현실이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차선책을 찾으며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도 조안처럼 은퇴하는 남편과 덤덤한 일상을 아름답게 생각하며 글을 쓰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