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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이라고 불립니다 Dec 11. 2022

한식과 한글

뮌헨 한글학교 교사가 되었다.

"ㅇㅇㅇㅇ 한글학교에서 교사 모집을 하던데요?

선생님 한번 해보세요. 아, 너무 멀려나"

처음은 차로 1시간 거리의 한글학교에 다니는 우리 학교 한국 아이의 엄마의 권유로 시작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유치원 교사였던 걸 아는 그 아이의 엄마가 아이가 다니는 한글학교에서 교사 모집을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 홈페이지를 보니, 유치초등부 합반의 교사를 모집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이력서를 이메일로 보내면서 아직 모집 중인지(모집기간이 안 나와 있어서) 이미 채용이 됐는지 모르겠으니 아직 모집 중이라면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테니 연락을 달라고 덧붙였다.

그러다가, 아 뮌헨도 있잖아. 하는  생각에  뮌헨 한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교장선생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가 있었다. 그냥 한번 전화해봤다.

(난 아직도 아날로그 세대인가 보다. 전화번호와 이메일이 있으면 일단 전화를 먼저 한다)

전화를 받으신 분은 전 장선생님이시라고 했다.

이번에 마침 유치부 한 반을 증설하게 되어서 교사를 뽑는 중이니 현 교장선생님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셨다.

바로 이메일을 썼다.

뮌헨 교장선생님께 먼저  전화가 왔다. 

접과 회의와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나는 뮌헨 한글학교 유치부 교사가 되었다. 얼마 만에 살려보는 전공인가.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는 토요일마다 한글학교가 운영되는 도시들이 많다. 주독일문화원에서도 교재 보조등 지원도 해준다.

한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주로, 2세나 한독 가정이나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오래 사는 아이들이다. 성인반도 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나 한독 가정의 독일 남편들이 주인 듯했다. 어린이반은 한글을 아는 아이들도 있고 그렇지 못 한 아이들도 있는데, 유치부는 한국 아이들이나 한독 아이들이나 비슷한 초급이라 다행이다.

뮌헨의 한글학교분들은 나의 먼 거리 이동을 다들 염려해주셨다. 우리 집에서 뮌헨까지는 기차로 편도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나도 모험이었다. 사실 우리 동네 작은 우물 안 개구리로 산 지가 20년이 되었고, 그렇게 살다 보니 기차를 타고 나선다는 것은 큰 맘을 먹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기만도 피곤해서 초저녁이면 잠자리에 들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일이 많다고 더 힘든 건 아니었다.

또 시간이 많다고 더 보람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주말은 작정하고 푹 쉬어야지, 하고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밤 12시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튜브 짤을 보면서 하루를 다 보낸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란... 내 취향을 파악하고 다음 영상을 클릭할 수밖에 없도록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유혹의 레드카펫을 깐다. 평소 간절히 원한 것도 아닌, 지나고 나면 기억도 나지 않을 시간들에 주말 하루를 몽땅 보낸 것에  놀라, 그동안 무심코 눌렀던 '구독'의  3분의 2 가량을 취소했다. 알고리즘의 지나친 친절이 덜해졌다.

바쁠수록,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더 촘촘히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낭비하는 시간들이 줄기도 한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50이 되기 전에 뭔가 인생의 다른 메뉴를 추가해야만 다.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고, 독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인지라 특성대로 곧 독립을 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성격상 '빈 둥지 증후군'을 맞을 것이 분명했다.

갱년기가 시작될 것이고, 나는 시간들의 고삐를 단단히 쥐어야만 했다.

보수는 높지 않지만, 보람이 있는 일이다.

차비 정도는 나오는 게 어딘가. 여행 삼아 오가면 될 일이다.

글 쓰는 여행길로 만들자! 생각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은 브런치 글을 올리자고 다짐해본다.


뮌헨 첫날. 오랜만의 대도시 나들이잔뜩 긴장 했나 보다

잠도 설쳤고, 기차도 1시간이나 이른 걸 탔다.

결과적으로는 기차를 이르게 탄 건 잘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대도시라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타고 가서 도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게다가 반대쪽 지하철이 바로 붙은 플랫폼이 아니라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돌아가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더랬다. 노선이 많았고, 지하철과 전철, 트램... 버스를 빼고도 기차처럼 생긴 교통수단만 3종류인 뮌헨에서의 초행길은 손안에 구글맵이 있어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그다음 주부터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기차 타는 시간이 더 이상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잠도 안 잤다. 잠  자볼까 하니 벌써 도착할 시간이었다. 지하철도 방향을 헤매지 않았다. 앞쪽에 탔을 때가 덜 걷나 뒤쪽에 탔을 때가 덜 걷나의 계산까지 마쳤다.

생각해보니 그래, 나 서울 살던 여자다! 뮌헨 지하철역보다 보다 훨씬 복잡했던 서울에서, 게다가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던 나였다. 문득 생각이 난 그 시절에, 그리고 비록 오래전이었기는 하나 몸은 기억하는 듯했고 금세 기세가 살아났다. 

뮌헨 중앙역에서 한글학교까지는 한번 갈아타기는 하지만, 총 3 정거장. 걸어가는 시간까지 해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리고 오는 길 한 정거장 거리에

선물처럼...

한국식품점이 있다.

비록 규모는 작아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한국 두부를 비롯해 자잘한 것들을 살 수 있다! 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뮌헨이 참 넓은 도시인데, 같은 라인의 한 정거장 다음이 한국 마트라니. 얼마나 감사한 보너스인가.

이른 아침이라, 6명 앉는 한 방(?)에 나 혼자 타고 간다.

경치도 구경하며 글을 쓴다.

요즘 독일의 에너지 요금이 올라 집에서 잘하지 않는 난방도 맘껏 올려본다.

나름 즐기며 매주 여행하는 기분을 내는 중이다


직장에서는 있는 재료로 나름 궁리하며 한식을 만들고

                                           백김치

고기만두

주말엔 한글을 가르친다.

조금 더 바람이 있다면,

온라인으로 이론은 이수한 한국어 교육능력시험에 합격해서,

일본어과정도 있고 중국어과정은 있는데 한국어과정은 없는 우리 동네 독일 시 교육기관에 한국어과정을 개설하고 싶고,

역시 중국음식, 인도음식 요리 코스 수업은 있는데 한식 수업은 없는 이곳에 한식 수업도 개설했으면 좋겠다.

렇게 한식과 한글이 독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으면 좋겠다.

(원래는 늘 '한식'이었는데 이제 '한글'도 더해졌다.)

렇게, 어쩌면...

내가 '어쩌다 독일에서 살았던 22년' 시간들에 보람있는 의미가 보태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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