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곧장 출근을 해야 해서 밥 먹으러 못 가서 어떡하냐고 하니, 아들이 쿨하게도 자기도 곧 아르바이트 면접을 가야 해서 집에서 먹고 가겠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밖에서 밥 못 먹는다고 서운해하면 어쩌나. 했는데. 저녁에라도 먹을까? 했더니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고 먹고 나가겠다고 한다.
친구들 만나러 가는데 밥은 먹고 가겠단다. 한동안은 내내 밖에서 사 먹겠다고 하더니... 피자 케밥에 질린 건가? 나가서 사 먹어도 피자 케밥 아니면 빵이니...
나는 밖에서 먹고 싶지 않은지가 오래됐다. 그래도 무슨 날이 되면 다른 사람들처럼 외식을 해야 하나? 하고 어딜 가야 하나 생각을 해보는데, 도무지 갈 만한 곳을 못 찾는다. 가격이저렴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지도 않고. 큰아들은 밖에서 뭐 먹자고 하면극구 반대한다. 비싸다고. 집에서 해 먹으면 훨씬 더 맛있게 많이 먹을 수 있다며. 생각해 보니 내가 늘 하던 말이다. 이제 아들도 그 말의 의미를 아는 것 같다.
조금은 다행이고 조금은 안 됐고... 그런 마음이 든다.
요즘은 매일매일이 돌밥돌밥이다. 한국에서 조카들이 와있기도 하고, 저녁에 공연으로 일찍 나가야 하는 남편과 아르바이트를 다니느라 어떤 주는 새벽에 나가야 하는 둘째까지. 밥때가 전혀 맞지 않아서 하루에 밥상을 몇 번씩 차리곤 한다. 그리고 입맛들이 다 달라서 메뉴도 다 다르다. 그건 나한테는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도 배를 채우기 위해 그냥 있는 거 먹는 걸 싫어하기에.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던 거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에게 생소한 채소를 먹이느라 접시에 작품을 만들기도 했더랬다.
밥을 토끼처럼 만들고는 토끼가 시금치를 먹고 싶대. 하면 시금치를 먹고 버섯도 먹어야 된다는데? 하면 버섯을 먹고... 그렇게 양파, 당근, 파를 먹었다. 다행히 지금은 주는 채소들을 다 잘 먹는 편이다.
뮌헨에 순회영사관이 온다고 해서 운전면허를 바꿔야 하는 조카와 여권을 연장해야 하는 둘째와 같이 갔다.
점심때가 되어, 내가 뮌헨에서 밥을 먹는다면 꼭 갔던 Soya라는 일본음식점에 갔다. 독일음식점으로 유명한 호프브로이 맞은편에 있다. 20년 전에는 일본 할머니가 주인이었었는데 지금은 베트남사람들이 인수해서 3호점까지 체인이 되어 있었다.
평소에 먹기 힘든 라멘을 시켰다.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면은 익히지도 않고 국물에 넣은 듯 생면을 씹는 맛이었다.
그나마 매운 국물이 좀 괜찮아서 국물맛으로 먹었다.
먹기 전부터 조금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음료수를 담은 컵에 이물질이 있었다.
유리컵 안쪽면에 있는 작은 이물질들. 카페주방에서 오래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안다.
식기세척기가 아닌 손으로 물에 대충 헹궈서 엎어서 물기를 말린 컵이라는 걸.
수세미로 안쪽까지 씻어내지 않은 컵이다. 깊지도 않은 컵인데, 왜 이렇게 씻었는지... 밥을 먹기도 전에 비위가 상했다.
그래서 나는 식당에서 차라리 병에 든 걸 통째로 주는 걸 더 선호한다.
비위상하는 걸 별로 참지 못하는 편이라서 다시 달라고 가져갔다. 컵을 수건으로 열심히 닦아서 주었다.
수건도 찝찝했지만, 이물질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받아 들고 왔다.
조카가 시킨 라멘은 더 심각했다. 하얀 국물이 너무 심심해서 조카는 거의 분노를 했다. 그러면서 팁 절대로 주지 말라고... 한 끼 한 끼가 소중한 조카의 분노를 나는 이해를 한다.
맛없는 요리를 먹으면 머릿속에 생각이 많다. 후회> 아, ㅇㅇ 먹을 걸, ㅇㅇ 집에 갈걸... 그런 식당을 선택하기 전 선택지에 있던 다른 곳들을 떠올리며 자책을 한다.
그리고는 당연히 지불한 돈 생각이 난다. 이날 우리 셋이 먹었던 값은 59.80이었다. 결코 적지 않은 값이다.
그래서 나는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고 나서 돈이 아까워지는 거, 참 싫다.
다른 날, 거리 축제에서 역시 조카가 먹은 닭고기튀김.
"이모, 이건 밀가루 튀김이지 닭고기 튀김이 아니에요."
정말 손가락보다도 얇고 짧은 닭고기...
뮌헨의 어느 가게,
줄이 줄이 너무 길게 서있어서 독일에서는 웬만하면 보기 어려운 광경이라 사진을 찍어봤다.
뭘 파나 보니, 시나몬롤가게였다. 여러 가지 토핑이 있는.
정말 불티나게 팔렸다.
"나는 누가 나처럼만 요리하면 맨날 가서 사 먹을 거야"
남편에게 늘 하는 말이다.
내가 하는 요리만큼 맛있게 하면. 이런 뜻이 아니다. 나처럼만 음식을 깨끗하게 한다면 이란 말이다.
손을 안 씻고? 안 깨끗한 그릇? 신선하지 않은 재료? 깨끗하게 보관하지 않은 것? 너무 싫어한다. 요리 중일 때는 대화하는 것도 꺼린다. 침 튈까 봐.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나는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 음식을 할 때는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요리를 했다. 가족들이 말을 걸어오니 대답은 해야 하니 말이다.
레스토랑에서 일을 할 때 셰프는 그릇을 깨끗하게 내가야 한다며 접시 가장자리를 꼭 닦아서 내보내라고 하며 보여주는데, 싱크대를 닦은 행주로 그릇의 가장자리를 닦았다. 보이는 곳만 깨끗하게 하는... 내가 손님이라면 이걸 미리 안다면 차라리 닦지 말고 주세요!라고 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새로 일하는 레스토랑의 오픈을 준비하던 무렵에는, 새로 산 프라이팬과 그릇들을 꺼내 준비하는데
다들 재료 보관용 통들과 프라이팬을 포장을 뜯고 바로 조리를 했다. 오픈시간이 촉박해 정신이 없던 때였고, 셰프가 그렇게 하는데 토를 달지 못하는 입장이어서 아무 말도 못 했는데 내내 마음에 자책이 되었다. 보통 새 프라이팬은 연마제를 발라 나오기 때문에 사자마자 키친타월로 닦아보면 검은색이 묻어 나온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지 않을 텐데...
(그 이후로 나는 독일에서 '축 개업!' 안 날은 절대 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고체 튀김기름을 이틀에 걸쳐 쓰는데, 한번 쓴 걸 저녁에 내려서 보관하고, 튀김기를 씻어서 다음날 고체기름을 다시 넣어서 하루 더 쓴 후 버리는데 처음에는 얼마간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내리지도 않고 튀김기를 닦지도 않고 며칠씩 같은 기름을 쓰더니, 그렇게 기름이 줄으면 새 기름을 섞어 넣으란다. 원래는 새 기름과 쓰던 기름을 섞으면 안 되는 건데 말이다. 내가 담당하는 일은 아니었어서 그냥 있는 기름으로 튀겨야만 했어서 그것도 내내 찝찝했더랬다. 그래서 나는 아는 사람들에게 먹으러 오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더랬다. 요리를 자신 있게 먹으라고 하지 못 하는 거...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참 마음이 부대끼는 일이다.
요즘은 요리를 못 할 수가 없는 시대다.
유튜브만 봐도 맛있는 레시피들이 넘쳐난다.
따라만 해도 맛있는 음식을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그런 때가 있다. 내가 참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 대신해줬으면 하는 때 말이다.
요즘은 한국요리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이국땅에서 한국 음식이 먹고싶으면 직접 해 먹어야할 때가 많다. 우리 동네처럼 한국식당이 없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럴 때, 못 해서가 아니라 하기 싫을 때, 그럴때 그냥 쉽게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믿고 먹을 수 있는 곳이라면 또 얼마나 좋을까?
지인들은, 집에서도 각각 먹는 메뉴가 달라 각각 요리하는 내게"무슨 식당이냐?" 하고 놀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뭘 해 먹이지? 생각하는 게 스트레스가 아니라 행복한 걸 보면 나는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인 건 맞는 거 같다.
어차피 집에서도 식당인데... 진짜 내 맘대로 운영하고 요리하는 작은 식당을 한다면? 큰아들이 자기도 요리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는 요즘은 더 그런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엄마와 아들이 함께 행복하게 요리하며 사는 삶을 꿈꿔본다.
에필로그)
한동안 골치 아픈 일들이 있어서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
독일에 살면 세금 문제가 참 어려운데, 아는 지인의 사업에 내 이름으로 함께 하다가 이 문제에 걸렸다.
그 지인은 연락이 되지 않고, 세무서에 해결해야 하는 세금이 많고... 상당 부분 내가 부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남은 부분들은 내가 할 수가 없어서 결국 회계사에게 맡겼다. 회계사비용이 만만찮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이름으로 생긴 일이지만 세금문제는 부부 공동책임이라서 해결하지 않으면 남편에게도 문제가 된다. 말도 못 하고 끙끙거리며 해결하느라 한동안 힘들었었다.
독일에 오래 살면 지나치게 꼼꼼해지고, 까칠해진다. 꼼꼼하고 까칠하지 않으면 생기는 것들이 녹록지 않다. 영수증 하나 서류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새로운 일들을 쉽게 벌이지 않는 게 다 이유가 있다. 모르지 않았는데도 나는 몰랐던 사람처럼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도 회계사의 도움이 참 크게 느껴진다. 내가 하기 어려운 일을 척척 알아서 해결책을 내어주는 게 너무 고마웠다.
아직 청구서를 받기 전이라 이런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회계사에게 맡기기 전 벌어진 세금이 남아있지만 어쨌든 일정 부분 마음의 짐을 덜어준 회계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