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말한다는 것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수업을 들었다.
지금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계시는 이성표 선생님께 ‘개성의 시작’이라는 일러스트레이션 수업을 받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그림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은 ‘작가로서의 나’를 찾아가는 수업이었다.
이미 현업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오랫동안 마음속에 그림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전공도 다양했다. 철학, 경영학, 공대 등 각자의 길을 걷다 이곳에 모였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만은 모두 같았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개성을 알아가고, ‘일러스트레이터란 그림으로 사람과 소통하려는 존재’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림에 대한 나의 시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첫 수업에서 옆자리 친구를 그리는 실습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 사람처럼 선 하나 제대로 그을 수 없었다.
이 실력으로 수업에 참여한다는 게, 아니 합격했다는 것조차 부끄러울 정도였다.
학교 과제 이후로 이렇게 ‘드로잉’을 해본 건 처음이었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나는 대체 왜 그리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수업이 거듭될수록, 내가 생각해오던 ‘그림’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내 수첩 속의 작은 낙서도, 때로는 훌륭한 그림이 될 수 있고
내가 가장 자주 그리는 스타일에서부터 나만의 개성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
자리를 이동해 낯선 사람을 그려보거나, 원하는 재료를 자유롭게 골라
사물이나 사람을 관찰하고, 그 느낌과 성격을 생각하며 표현해보는 것.
익숙하지 않은 재료로 시도할수록 틀에 박히지 않은 신선한 표현이 나올 수 있다는 것.
때로는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나 리듬을 따라 그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 안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해서 인격이 뛰어난 건 아니듯,
그림도 단순히 테크닉이 좋다고 해서 좋은 그림은 아니다.
진짜 좋은 그림은, ‘나만의 언어’를 가질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표현하려는 텍스트에 따라 어울리는 기법이 있고,
그림 역시 그 내용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포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즐기는 마음’이다.
즐기며 그린 그림엔 그 즐거움이 고스란히 담겨 사람들에게도 전달된다.
‘내가 과연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던가?’ 되묻게 되었다.
거꾸로, 내가 책이나 그림을 볼 때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았는지를 떠올려보니
어렴풋이,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흐릿한 감정들 속에서,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의 방향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