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 이놈아 [성교육과 피임-에이섹슈얼의 경우1]
*본문에 등장하는 Glen이라는 이름은 'Jingle Balls'라는 슬랭으로부터 따온 가명입니다.
취해서 Glen네 침대에서 잠들었나 보다. 하루가 지난 건가?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11월의 유럽여행은 비수기 중 비수기일 만하다. 창밖을 봐도 대낮인지 저녁인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니까. TV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Glen은 거실에 있는 듯했고, 시간은 오후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제는 자전거를 함부로 탔다가 안장이 너무 높아 죽을 뻔했으니 오늘은 별 일 없이 여기서 뒹굴어도 좋을 것 같다. 멍하게 핸드폰을 만졌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나 피임을 했던가...?
했을 리가 없지. 왜냐면 당시 나는
[피임법에는 질외사정, 콘돔 착용, 또는 피임약을 주기적으로 먹는 방법이 있다. 질외사정은 성공률이 매우 낮기에 적합한 피임법은 아니며, 콘돔 착용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주기적인 성관계 시 여성이 피임약을 복용하는 방법도 피임 성공률이 높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라는 시험용 지식만 알고 있었고, 숙소에서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내내 끈적한 시선을 보냈던 Glen은 콘돔은커녕 옷조차 제대로 껴입지 않는 애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노란 빗자루 같은 지금의 머리 전에는 어떤 머리를 하고 있었는지 이것저것 물어본 주제에 정작 대답에는 큰 반응이 없던 Glen은 이내 "Can I kiss you?"라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고 문법에 맞는 문장을 내뱉었다. 그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거절이란 걸 해보지 못한 나는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어떤 소리들을 웅얼거렸다. 그리고 그건 유구한 전통에 의해 긍정의 뜻으로 해석되었다.
분명 키스만 한다고 했지만 수많은 레파토리가 그렇듯 섹스까지 흘러갔다. 숙소에서 하루 종일 굴러다니는 주제에 몸도 탄탄하고 예쁜 걔에 비해 나는 매일 빨빨 돌아다니는데도 말랑말랑했고, 맨몸에 짙은 회색 샤워가운만 걸치곤 하는 걔와 달리 내가 입는 속옷에는 아주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걔가 그걸 보고는 작게 웃음을 터트린 것 같기도 하고... 중간중간 분위기를 잡으려 이런저런 말을 했던 것도 같은데... 일단 나는 '무사히 이 일을 끝내고 예쁜 에펠탑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질외사정을 했는데... 아니 근데 사정은 안에서부터 했었던 것 같은데...?
급하게 머리를 굴려 가임기를 계산하려 했지만, 평소 관심과 지식이 전무했던 내가 그 상황에서 제대로 된 날짜를 추측해내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애초에 내 마지막 생리일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기록도 없었고. 손을 떨며 영어사전에 '피임'을 검색해 Glen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어. 근데 걱정하지 마."였다. 니가 무정자증이거나 정관수술을 받은 게 아닌 이상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었단다... 이... 얼굴만 예쁜... 아 그때 그냥 욕할걸.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했을 텐데.
*"캔 아 키스 유?"-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