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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 himi Nov 07. 2020

"너 아직도 그렇게 살아?"

니가 몰 알아   [수면과 기상시간-ADHD의 경우 1]

말 그대로다. 니가 몰 알아 XX!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걸 진짜 못 했다. 일어나는 것만 못한 건 아니고, 밤에 자는 것도 잘 못 했다. 불면증이었냐고? 아니... 그건 아니고...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잘 잤다. 길바닥에서나 공항에서나 버스, 지하철, 기차, 비행기,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아니 머리를 굳이 대지 않아도 잘 잤다. 문제는 그게 너무 불규칙했다는 거다. 여차 저차 하다 정신 차리면 새벽 3시는 가뿐히 넘기기 일쑤였고, 허겁지겁 잠들면 다음날 랜덤한 시간에 일어났다. 불규칙한 일상에는 피곤함도 덤!


근데 이게 완전히 컨트롤이 안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진짜, 꼭, 내일 반드시 O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간절히 기도하고 베개를 쎄게 세 번 때리고, 그걸로도 부족해 앉아서 자거나 일부러 불을 켜 두고 자면 계획대로 일어날 수 있었다. 알람을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5분에 한 번씩 세팅해놓긴 해야 했지만.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평소의 배로 피곤했던 걸 보면 실제로 잠을 잔 건지는 의심스럽다.


ADHD임을 인정하고(?) 복약 상담을 할 때, 의사 선생님의 첫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아침에 잠은 잘 깨요?"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


ADHD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잠을 깨는 걸 잘 못 하는 경향이 있단다. 뭐시기때문에 각성이 힘들다나? 신체적인 문제에 대해 나는 내 노오력 부족을 탓했고, 늦잠을 만회하기 위해 밤을 새우려다 더 늦은 시간에 잠들어 악순환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꾸준히 같은 시간에 잠들면 같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대서 연습을 안 한 건 아니었으나, 어떤 날은 오전 8시, 어떤 날은 오후 1시, 또 어떤 날은 오전 11시처럼 정말 종잡을 수 없게 눈을 떴다. 눈 뜨자마자 시계를 확인한 후 울곤 했는데, 나중에는 우는 것도 사치스러워 참을 줄 알게 됐다. 근데 그 절망감을 새끼손톱보다 작은 약 한 알이 해결해줄 수도 있다니. 이건 무조건 고!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몇 시건 눈 뜨면 일단 약을 먹는 것부터 연습했다. 다시 잠들어도 괜찮으니 눈을 뜨면->약을 먹는다는 것에 집중하기. 5분 간격으로 다양한 소음과 진동을 선보여야 하는 고된 노동을 핸드폰에게 한 시간 정도 시킨다. 힘겹게 눈을 떠서 전날 밤 머리맡에 놓아둔 약을 먹는다. 다시 정신 차려보면 이미 2차 수면을 거하게 해먹은 뒤였지만 그걸 일주일쯤 반복하자 첫 번째 알람이 울릴 때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된 기상이 가능해지면서 기상시간을 오전 8시 반으로 앞당길 수도 있게 되었다. 약 복용 시작일로부터 고작 2주 반 만에, 2n년동안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오 통재라. 아니 좋은 거지! 좋은데... 좀 허탈한 건 사실이다.




헉,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떴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머리맡을 두어 번 더듬어 핸드폰을 찾았다. 시간은 딱 10시. 전공 수업 시작 시간이었다.


다급히 옷을 주워 입으며 이를 닦고 세수까지 마쳤다. 물기를 닦을 새는 없었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발에 끼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학기는 진짜 제대로 다니고 싶었는데. 전력질주를 하면서도 눈 앞이 잠깐 흐려졌다. 다행히 자취방이 학교 근처라, 과실에 도착하면 10시 15분 정도가 될 것 같았다. 지각치 곤 양호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수업이 이미 시작해 더 이상 1층에 사람은 없었고, 나 말고 더 탈 사람은 없을 것 같아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문이 거의 닫히려는 찰나,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누군가가 보였다. 황급히 열림 버튼을 눌렀는데, 어, 반가운 아는 얼굴이네.


내가 돌연 휴학을 선언한 이후 연락 한 번 없던 친구였다. 이제 3학년이 되었겠네. 그에 비해 나는 휴학한 주제에 전과까지 해 1학년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게 민망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그 짧은 찰나, 반가운 아는 두 눈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너 아직도 그렇게 살아?"

상황 파악이 끝난 모양이다.


잠깐의 정적과, 띵동,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도망치듯 밀려나오며 속으로는 비겁한 쌍욕을 했다.  이번 학기 처음으로 지각한 건데... 그러는 너는  지금 엘리베이터 타는데...! 아씨 잡아주지 말걸... 아니 근데 에도 대충   아니었는데... 아니... ... 아니... 니가  알아 XX!




나는 이제 안다. 걔가 나를 '그렇게' 여겼을 당시, 나는 도저히 제대로 된 생활을 흉내 낼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그래도 제대로 살아보려고 애썼다는 것과,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라 매일같이 자책 수십 알을 삼켜야만 했다는 것도. 그와 함께 아무도 몰래 희망 한 알도 꾸역꾸역 삼켰지만, 그 모든 시도는 너에게 하찮아 보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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