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몰 알아 [수면과 기상시간-ADHD의 경우 1]
말 그대로다. 니가 몰 알아 XX!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걸 진짜 못 했다. 일어나는 것만 못한 건 아니고, 밤에 자는 것도 잘 못 했다. 불면증이었냐고? 아니... 그건 아니고...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잘 잤다. 길바닥에서나 공항에서나 버스, 지하철, 기차, 비행기,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아니 머리를 굳이 대지 않아도 잘 잤다. 문제는 그게 너무 불규칙했다는 거다. 여차 저차 하다 정신 차리면 새벽 3시는 가뿐히 넘기기 일쑤였고, 허겁지겁 잠들면 다음날 랜덤한 시간에 일어났다. 불규칙한 일상에는 피곤함도 덤!
근데 이게 완전히 컨트롤이 안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진짜, 꼭, 내일 반드시 O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간절히 기도하고 베개를 쎄게 세 번 때리고, 그걸로도 부족해 앉아서 자거나 일부러 불을 켜 두고 자면 계획대로 일어날 수 있었다. 알람을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5분에 한 번씩 세팅해놓긴 해야 했지만.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평소의 배로 피곤했던 걸 보면 실제로 잠을 잔 건지는 의심스럽다.
ADHD임을 인정하고(?) 복약 상담을 할 때, 의사 선생님의 첫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아침에 잠은 잘 깨요?"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
ADHD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잠을 깨는 걸 잘 못 하는 경향이 있단다. 뭐시기때문에 각성이 힘들다나? 신체적인 문제에 대해 나는 내 노오력 부족을 탓했고, 늦잠을 만회하기 위해 밤을 새우려다 더 늦은 시간에 잠들어 악순환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꾸준히 같은 시간에 잠들면 같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대서 연습을 안 한 건 아니었으나, 어떤 날은 오전 8시, 어떤 날은 오후 1시, 또 어떤 날은 오전 11시처럼 정말 종잡을 수 없게 눈을 떴다. 눈 뜨자마자 시계를 확인한 후 울곤 했는데, 나중에는 우는 것도 사치스러워 참을 줄 알게 됐다. 근데 그 절망감을 새끼손톱보다 작은 약 한 알이 해결해줄 수도 있다니. 이건 무조건 고!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몇 시건 눈 뜨면 일단 약을 먹는 것부터 연습했다. 다시 잠들어도 괜찮으니 눈을 뜨면->약을 먹는다는 것에 집중하기. 5분 간격으로 다양한 소음과 진동을 선보여야 하는 고된 노동을 핸드폰에게 한 시간 정도 시킨다. 힘겹게 눈을 떠서 전날 밤 머리맡에 놓아둔 약을 먹는다. 다시 정신 차려보면 이미 2차 수면을 거하게 해먹은 뒤였지만 그걸 일주일쯤 반복하자 첫 번째 알람이 울릴 때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된 기상이 가능해지면서 기상시간을 오전 8시 반으로 앞당길 수도 있게 되었다. 약 복용 시작일로부터 고작 2주 반 만에, 2n년동안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오 통재라. 아니 좋은 거지! 좋은데... 좀 허탈한 건 사실이다.
헉,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떴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머리맡을 두어 번 더듬어 핸드폰을 찾았다. 시간은 딱 10시. 전공 수업 시작 시간이었다.
다급히 옷을 주워 입으며 이를 닦고 세수까지 마쳤다. 물기를 닦을 새는 없었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발에 끼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학기는 진짜 제대로 다니고 싶었는데. 전력질주를 하면서도 눈 앞이 잠깐 흐려졌다. 다행히 자취방이 학교 근처라, 과실에 도착하면 10시 15분 정도가 될 것 같았다. 지각치 곤 양호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수업이 이미 시작해 더 이상 1층에 사람은 없었고, 나 말고 더 탈 사람은 없을 것 같아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문이 거의 닫히려는 찰나,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누군가가 보였다. 황급히 열림 버튼을 눌렀는데, 어, 반가운 아는 얼굴이네.
내가 돌연 휴학을 선언한 이후 연락 한 번 없던 친구였다. 이제 3학년이 되었겠네. 그에 비해 나는 휴학한 주제에 전과까지 해 1학년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게 민망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그 짧은 찰나, 반가운 아는 두 눈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너 아직도 그렇게 살아?"
상황 파악이 끝난 모양이다.
잠깐의 정적과, 띵동,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도망치듯 밀려나오며 속으로는 비겁한 쌍욕을 했다. 나 이번 학기 처음으로 지각한 건데... 그러는 너는 왜 지금 엘리베이터 타는데...! 아씨 잡아주지 말걸... 아니 근데 전에도 대충 산 건 아니었는데... 아니... 아... 아니... 니가 몰 알아 XX!
나는 이제 안다. 걔가 나를 '그렇게' 여겼을 당시, 나는 도저히 제대로 된 생활을 흉내 낼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그래도 제대로 살아보려고 애썼다는 것과,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라 매일같이 자책 수십 알을 삼켜야만 했다는 것도. 그와 함께 아무도 몰래 희망 한 알도 꾸역꾸역 삼켰지만, 그 모든 시도는 너에게 하찮아 보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