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질서의 사람
나는 늘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아니, 솔직하게 고백하면 분명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모호한 말은 불편했고, 일관되지 않은 태도는 불신의 대상이었다.
감정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었고, 관계란 철저히 책임으로 유지되는 약속된 질서였다.
감정이 올라올 땐 속으로 셈을 했다. 아니 셈이라기보다는 눈치를 많이 봤다.
'이걸 말하면 상황이 나아질까? 아니면 상대에게 짐이 될까?'
그렇게 감정은 하나 둘 입 안에서 맴돌다 조용히 삼켜졌다.
그 시절 나의 MBTI는 ISTJ였다.
결과지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건 누가 내 안을 들여다본 것처럼 정확했고, 마치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매뉴얼 같았다.
나는 그 결과에 아무런 저항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했다.
"그래,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지."
복잡한 감정을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설명서 한 권이 손에 쥐어진 기분이었다.
이제 나는 나를 '정의된 방식'으로 살면 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시절의 나는 규칙과 책임, 질서를 삶의 우선순위로 여겼다.
회사에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감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감정을 덜어내고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문제를 확인하며, 오로지 규정 안에서 시시비비를 따졌다.
모든 것은 체계 안에 있어야 했고, 그 체계 밖의 일들은 '리스크'라고 여겼다.
나의 일상은 대체로 정돈되어 있었다.
일상 루틴은 안정적이었고, 정해진 루트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휴일에도 계획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졌고, '그냥 쉰다'라는 말은 나에겐 낯설었다.
말수는 적었고, 감정표현은 항상 조심스러웠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늘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고려했고, 갈등은 최대한 피하고 싶어 했다.
겉으로는 무던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속에는 수많은 원칙과 기준이 질서 있게 줄지어 있었다.
나는 타인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실제로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연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게 연애란, 설레는 감정보다 지켜야 하는 관계였다.
'좋아해'라는 말보다 '괜찮아, 내가 감당할게'라는 말이 더 익숙했다.
사랑은 선택이라기보단 결심이었고,
감정이란 그저 관리하고, 유지보수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었다.
나는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걸 채워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했다.
문제가 생기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분석했고, 해결책을 찾으려 부단히 애썼다.
그러나 정작 감정 자체를 다루는 법은 무지했다.
나는 성실하고 신뢰를 주는 사람이었지만, 따뜻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그게 그 당시 내가 가진 한계였다.
무언가를 정확하게 하고 싶었고,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때로는 내 감정을 외면했고, 내 필요도 묵살했다.
그렇게 20대를 지나왔다.
평탄했고, 안정적이었으며, 외형적으로는 '모범적인 삶'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텅 비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빈자리를 '책임'으로 메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들여다본 거울 속의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나였지만, 또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버티며 살아야 할 이유가 뭘까?'
그 질문은 아주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나를 파고들었다.
정형화된 삶의 그림자
ISTJ는 흔히 "근면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리자"로 불린다.
나 역시 그러한 평가를 즐겁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와 되돌아보면, 나는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기계처럼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감정은 일의 방해물이고, 관계는 업무의 연장이었으며, 그러다 보니 나 자신조차 무의식적으로 '성과물'처럼 다뤘던 것 같았다.
나는 늘 스스로를 "컨트롤 가능한 사람"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그 말은 역으로,
"나조차도 나를 통제하지 않으면 무너질까 두려웠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그 말을 마음속으로 곱씹을수록,
결국 나조차 '관리의 대상'으로 여겨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감정을 다룬 게 아니라 감정을 감시해 온 건 아닐까.
정확함은 나를 보호했지만, 동시에 고립시켰다.
그렇게 단단하다고 믿었던 내 삶은, 어느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