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려다, 나를 잃다
나는 연애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랑 앞에서는 조금 더 유연해지고 싶었고,
상대에게 감정적으로도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맞춰주려 했다.
논쟁은 피하고, 감정은 조율하고, 감싸주고 이해해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게 어른스럽고, 바람직한 연애 방식이라고 믿었다.
겉으로 보기엔 무던하고 이상적인 연애였다.
하지만 그건 껍질뿐이었다.
나는 늘 내 감정을 조심스럽게 다뤘다.
상대방이 조금 거칠게 굴어도, 조금 이기적이어도,
'그래, 내가 더 참으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넘겼다.
그렇게 내 감정은 통제했지만, 내 기준은 희미해짐을 그땐 몰랐다.
내가 참는 만큼 상대가 나를 더 믿고,
내가 맞춰주는 만큼 관계가 더 깊어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대는 점점 선을 넘기 시작했다.
말을 함부로 하고,
기분에 따라 연락을 끊고,
심지어는 나를 당연한 존재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감정을 꺼내지 않았다.
내 감정보다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통제의 핵심은 나 자신만이 아니었다
나는 내 감정뿐만 아니라,
내가 보여지는 모습까지 통제하려 했다.
지인들 앞에선 늘 좋은 연애를 하는 사람이었고,
상대의 단점도 잘 포장해서 말했고,
나조차도 '이 정도는 괜찮다'며 내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건 어느새 '연애를 잘 해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책임감처럼 변해 있었다.
관계의 실제보다, 관계의 외관을 지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어느 날, 나는 상대가 나 몰래 다른 사람과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동안의 모든 기억이 마치 연극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씩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노, 배신감, 그리고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내가 나를 얼마나 돌보지 않았는가'에 대한 깊은 자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괜찮은 척을 했던 걸까?'
나는 상대를 위해 맞춰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 감정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상대가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아 보이려고 한 선택들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감정만 통제한 게 아니었다.
나는 관계 전체의 모양,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까지 통제하려 했다.
그렇게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우리의 관계가 아니라 나의 이미지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무너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돌보지 않았던 나'를 직면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기 시작했다.
무너진 그 자리에 나는 오래 머물렀다.
부끄럽고, 화나고, 서럽고, 무엇보다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를 파고들다가,
처음으로 내 감정의 흐름을 글로 써보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
내가 참고 넘겼던 순간들.
내가 조용히 외면했던 나 자신을 복기하면서,
나는 조금씩 진짜 '나'로 돌아오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건 나의 감정을 복원하는 시간이었고,
내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외부와 이미지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