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의 종말》 - 0. 프롤로그

우리는 아직 성실함을 믿을 수 있을까

by 끄덕이다

"열심히 살면, 정말 괜찮아질까?"


우리에겐 항상 이런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괜찮아진다."
이 말은 우리가 가장 오랫동안 공유해 온 신화였고,

단순한 믿음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약속이었다.
국가는 제도와 보상을 통해, 부모와 학교에선 훈육과 교육을 통해, '성실함'이라는 가치를 다음 세대로 전파했다.
그렇게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명제는 우리 삶의 기본 값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믿음과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벽에 일어나 출근했고, 휴일도 반납하며 일했으며,
'성실하게' 대출금을 갚아가며 내 집 마련을 꿈꿨다.
커피 한 잔도 절약하며 저축했고, 크게 벌지는 못하더라도 정직하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믿어왔던 것처럼 삶이 우리 편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묻는다.
그 믿음, 여전히 유효한가?




최근 뉴스에서 이런 소식이 들려온다.
<7년 이상 빚을 못 갚은 사람들의 채무를 국가가 탕감해 준다>
<전 국민에게 1인당 최대 50만원의 소비 쿠폰이 지급된다>

갚지 않아도 용서받고, 없어도 받을 수 있는 세상.
부채가 책임이 아니라 정책의 대상이 되고, 소비가 도덕이 되는 풍경.
성실함의 가치보다 정책에 '포함됨의 조건'이 더 중요해진 듯한 세상이다.

정직하게 장사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자영업자 옆에서,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은 정부의 지원 명단에 오르고,
근면하게 원리금을 갚아온 직장인은 아무런 혜택도 없이 그 소식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다.

그 순간, 우리 안에서는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감춰져 왔던 하나의 질문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고 있지?"


누구도 앞에서 말하지 않지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는 줄어들고, 포퓰리즘 정책과 실물 자산이 인생의 부를 결정짓는 세상에서
'성실'은 더 이상 최고의 생존 전략이 아님을,

더 이상 과거의 '신성한' 노동의 가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억울함이 아니다.
이것은 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물음이다.
‘노동과 보상’, ‘성실과 생존’ 사이의 등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신호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정책을 기다리며 소극적으로 생존을 택할 것인가,
혹은 레버리지를 통해 투기적 자산전쟁에 몸을 던질 것인가.

이 갈림길은 불편하지만 현실이다.
그리고 이 불편한 현실은,

지금 이 사회가 공식적으로 '노동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선언을 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의심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성실함은 이제 무엇을 보장해 주는가?
노동의 가치는 여전히 존엄한가?
아니면 지금, 성실함은 낡은 신념일 뿐인가?

이 질문은 그저 개인의 회의가 아니다.
이 질문은 시대를 진단하는 도구다.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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