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 기본법,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대 스테이블코인 시대에서 우리들의 좌표

by 끄덕이다

https://www.news1.kr/finance/blockchain-fintech/5816425


디지털자산 시대, 법은 얼마나 따라오고 있는가


2024년 6월, 한국 국회에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의되었다. 디지털자산 시장을 제도권으로 포섭하려는 이 움직임은, 오랜 시간 규제의 공백 속에서 형성된 혼탁한 가상자산 시장을 제도적으로 질서화하려는 시도다. 그리고 곧이어 7월에는 더 진일보한 형태의 '디지털자산혁신법'이 추가로 발의될 예정이다.

이 두 법안의 공통된 키워드는 스테이블코인이다. 기존 암호화폐와 달리, 실물 자산(예: 법정화폐, 금)에 연동되어 가격 안정성을 지닌 이 디지털자산은, 거래와 결제 수단으로써의 실용성과 금융시장에 대한 파급력 양면에서 제도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법안은 어떤 구조인가?


먼저 민병덕 의원의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사업자를 10개 유형으로 세분화하고, 백서 공시, 이용자 보호, 거래소 신고 요건 등을 규정한 포괄적 기본틀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국내 발행 디지털자산' 중심이다.

이와 달리 혁신법(7월 발의 예정)은 다음과 같은 강화된 구조를 도입한다.

① 스테이블코인 발행 요건: 자기자본 요건을 5억→10억으로 상향, 상환의무(3일 내), 준비자산 요건, 임원 자격 등 총 12가지 조건.

② 발행 주체의 확장: 주식회사, 금융기관, 외국법인까지 포함하되, 한국은행 및 금융위의 감독 하에 둠.

③ 백서 공시 의무화: 실질적인 사업 실체 없이도 청사진 수준의 백서까지 규제 범위에 포함시킴.

④ 외국발 스테이블코인 규제: 테더(USDT), USDC 등도 국내 진입 시 디지털자산업자 등록 및 규제를 적용.

한마디로, 민 의원 법안이 기초질서 구축에 가깝다면, 혁신법은 '통화주권 + 국제자산 규제 + 산업 실험'의 3요소를 고려한 입체적 법안이다.




글로벌과의 비교: 미국 vs 싱가포르 vs EU


미국은 '지니어스 법안(GIANTS Act)' 등을 통해 연방 허가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모델을 추진 중이다. 특히 은행 라이선스 + 예금자보호 + 준비자산 100% 등을 강제하여 기존 금융 질서와의 통합을 도모한다.

싱가포르는 MAS(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를 중심으로 자산연동형 디지털토큰(RWAT) 규제를 도입하여 사업자 등록, 자본금 요건, 기술·보안 감사 의무 등을 강화하고 있으며, 블록체인 기반 외화 송금 실증에도 적극적이다.

EU는 2024년 MiCA 시행으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발행자 등록, 공시, 준비자산 보관, 감독권한 등 전방위적 규제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MiCA는 EU 전체 통일 규제체계로서 글로벌 기업 진입 허들을 설정한다.


한국의 법안은 이들 국가에 비해 다소 혼합형이다. 은행 중심 모델은 아니며, 빅테크나 핀테크의 진입을 열어두되 인가제, 상환의무, 공시책임, 한국은행의 개입 가능성 등을 통해 거버넌스를 강조한다.




법안의 맹점 : 규제와 현실의 간극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분명 우리나라가 금융기술 패러다임의 대전환기를 맞이하며 내놓은 일종의 출발선이다. 하지만 이 출발선에는 아직 '구조적 공백'과 '의도된 회피'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의 관계 설정이 전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법안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면서도, 정작 한국은행이 추진 중인 CBDC와 어떤 상호작용을 갖는지에 대한 입장을 유보한다. 이는 향후 스테이블코인과 CBDC 간 기능 중첩, 법적 위계, 지급결제 시장 질서의 혼선을 불러올 수 있다. 결국 "누가 진짜 디지털 원화를 대표하는가?"라는 핵심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 셈이다.

또한 발행 주체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다. 법안은 원칙적으로 인가제를 통해 일정 기준을 갖춘 사업자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은행뿐만 아니라 빅테크 기업, 전자지급결제업자 등도 발행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발행 구조에 대한 실질적인 감독 원칙이나 리스크 분산 구조는 모호하게 남아있다. 자본력과 기술력을 보유한 빅테크가 시장을 장악할 경우, 중앙화된 사설 디지털통화가 실질적인 통화 기능을 대체해 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세 번째로, 법안은 디지털자산을 세 가지 유형(가치형·증권형·환불형)으로 분류했지만, 분류 기준의 경계가 현실의 디지털자산 구조와는 괴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기능과 동시에 유동성 공급 수단이나 수익창출 구조를 함께 갖고 있을 경우 어느 카테고리로 분류할지 애매하다. 이로 인해 해당 자산의 법적 성격이 시장 해석에 따라 변형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게다가, 법안은 NFT, 탈중앙화거래소(DEX), 디파이(DeFi), DAO 등 새로운 형태의 탈중앙 서비스에 대한 직접 규율 조항을 거의 담고 있지 않다. 이는 산업계 입장에서는 규제 회피의 기회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법의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 향후 파생될 리스크에 대해 사후대응적 입법이 반복될 경우, 우리나라는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계속 한 발 뒤처질 수 있다.

또한, 이용자 보호 장치에 대한 집행력 확보 수단이 실질적으로 취약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발행자와 사업자에게 공시·자산예치·청산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만약 해외 기반 프로젝트나 실질 통제 불가능한 사업자의 경우, 이 조항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특히 '코인러시'로 투자자가 빠르게 몰릴 수 있는 초기 시장 특성을 고려하면, 규정은 있으나 통제할 수 없는 규제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법안은 금융소비자와 투자자 중심의 관점보다는, 행정적 감독체계 정비에 초점을 맞춘 인상을 준다. 이는 사용자 관점에서 "내 자산은 안전한가?", "이 프로젝트가 진짜인가?", "만약 거래소가 파산하면 내 코인은 어떻게 되나?"와 같은 실질적 질문에 충분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던져야 할 5가지 질문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지 제도권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새로운 금융 질서의 주체로 전환되는 순간임을 뜻한다. 그렇다면 투자자이자 한 개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첫 번째 질문, 나는 어떤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가?

과거에는 은행 통장과 부동산, 주식이 자산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지갑 안에 담긴 것이 현금인지, 암호화된 코드인지, NFT인지, 스테이블코인인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위험과 기회가 동반된다.


두 번째 질문, 이 자산의 가치는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가?


법정화폐는 정부의 신뢰, 주식은 기업의 수익, 금은 물리적 희소성에 기반한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이나 디지털자산은 어떤가?


"USDT는 달러를 담보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 달러가 있는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어느 은행, 어떤 기업이 책임지는가?"


투자자 스스로 담보 구조, 회계 감시, 실물 연동 여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이름만 '안정화된(stable)'이지 실질은 불안정한 자산에 베팅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질문, 디지털 자산의 기술 발전 속도는 내 이해 속도보다 빠른가?

기술은 항상 규제보다 빠르다. 그리고 대부분의 투자자는 기술보다 느리다.

"AI가 만든 백서, NFT 기반 실물 연계자산,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 등 복잡한 구조 속에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지 기술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투자하는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이다. 몰라서 잃는 손실은 남의 책임이 아니다.

네 번째 질문, 거래소는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이용자는 안전한 플랫폼을 정부가 정해주기만을 기다려선 안 된다. 백서 공시, 내부 통제, 해킹 이력, 실시간 출금 여부 등 스스로 알아보고 따져봐야 한다.

마지막 질문, 디지털 자산은 수익인가, 미래인가?

투자의 목적이 수익만이라면, 일시적 가격 상승에 따라 잡히기 쉽다. 그러나 디지털 자산을 미래의 금융 질서로 이해한다면, 그 안에 참여하고 체화하려는 태도가 생긴다.

"나는 단지 코인에 투자하는가, 아니면 디지털 금융의 시민이 되려 하는가?"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


첫 번째, 금융문해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력이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법이 개인을 완전히 보호해 줄 수 없다.
백서를 읽는 능력, 담보구조를 이해하는 기본지식, 기술 흐름을 감지하는 정보감각이 앞으로는 '금융의식주'가 된다.


두 번째,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결제권력이 된다.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투자 상품이 아니다. 결제, 송금, 임금지급 등 경제 순환의 신경망을 대체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의 자산뿐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자유가 어느 통화 질서에 종속되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세 번째, 블록체인은 민주화 도구이자 독점화 도구가 될 수 있다.
기술은 방향이 없다. 탈중앙을 꿈꾸는 블록체인도 거버넌스를 장악한 자에 따라 중앙보다 더 강한 독점권력이 될 수 있다.
투자자는 단지 가격을 보지 말고 거버넌스를 보라. 누가 이 생태계를 설계하고, 통제하고, 수익화하는가?




디지털자산시대의 본격적 개막을 앞에 두고..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단지 법률 조항이 아니다.
이 법은, 우리가 이제 "금융을 소비만 하던 시민에서 금융을 설계하고 해석해야 하는 시민"으로 바뀌어야 함을 뜻한다.

법이 우리의 지갑을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 지갑과 기술을 습득하고 이해해야만 지켜진다.

우리는 묻는다.

"나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고, 무엇에 의해 움직이며, 어떤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가?"
"나는 디지털 자산 시대의 진짜 시민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법은 우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술을 다루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때,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단순한 법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사회계약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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