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균열 앞에서 만난 질문, "배움에서 익힘으로 나아가고 있느냐?"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 『다산의 마지막 질문』 中
우리는 흔히 비슷한 말처럼 쓰지만, 사실 그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다.
배움은 지식을 얻는 일이다.
책에서 배우고, 강의에서 배우고, 삶의 경험에서 배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배움은 여전히 '외부'에 머문다.
익힘이란 다르다. 그것을 내 안에 새겨 반복하고, 몸으로 반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익힘이 된다.
공자가 말한 "때때로"는 그래서 중요하다. 배움은 한 번으로 끝날 수 있지만, 익힘은 수시로 반복하지 않으면 금세 사라진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배우는가?
누군가는 학문을 위해, 누군가는 돈을 위해, 또 누군가는 지위와 명예를 위해 배운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해 배우는 경우는 드물다. 내게도 그랬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세월동안 나 자신을 위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학 입시에서 넘어지고, 취업 준비에서 좌절하여 상처를 입었을 때 조차, 나는 단지 실력 부족만 생각했지 내가 어떤 상심을 겪었는지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더 많은 것을 배우려 했고, 스스로를 엄격하게 채찍질했다. 그러나 그 모든 배움은 세상을 따라가기 위한 것이었지,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삶의 균열이 찾아왔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거의 완전히 무너졌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이젠 달라야 한다는 것을.
외부를 향하던 배움에서 멈추고, 내 안을 향한 익힘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을.
『다산의 마지막 질문』은 그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처음엔 그저 고리타분한 선비의 말처럼 보였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이 문장은 내 일상을 겨냥하고 있었다.
"배움에서 익힘으로 나아가고 있느냐?" 이 질문을 나는 피해갈 수 없었다.
익힘은 결국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어떤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일이다.
과거에는 필요 없다고 여겼던 철학과 마음챙김이 이제는 가장 중요한 삶의 토대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조금씩 익혀가는 중이다.
훗날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지금보다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나고 싶다.
그때는 오늘의 흔들림이 또 다른 기쁨의 밑거름이 되어 있을까.
이번 장 마지막에 작가가 쓴 구절이 당시 나에게 영감을 주었기에, 한 줄 소개하며 마쳐본다.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공부는 나를 알아감으로써 나를 사랑해나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