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의 충(忠)이 당신의 서(恕)가 되기를

중심을 잡는 마음에서 공감의 실천으로

by 끄덕이다

공자가 말했다. "삼아! 내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다."

증자가 "예"하고 대답했다.

공자가 밖으로 나간 다음 문인들이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라고 물었고 증자가 대답했다.

"스승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이다." - 『다산의 마지막 질문』 中



공자가 말한 '하나로 꿰뚫는 도'는 결국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충忠'과 '서恕'

이 두 글자는 어떻게 하나의 이치가 될 수 있을까.


'충(忠)'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① 충성 ② 공평 ③ 정성 ④ 공변(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 등의 뜻풀이가 나온다. 그리고 '충'이란 글자를 살펴보면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충의 의미를 타인을 향한 맹목적인 복종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각도를 돌려서 보면 다음과 같다.

충(忠)이란 타인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아닌 먼저 내 마음의 중심을 단단히 세우는 상태. 마음이 중심에 서 있으면 바깥의 유혹이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한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 즉 이것은 '정직함'인 동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는 '성실함'인 것이다. 나를 속이지 않고 나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 그것이 '충'의 본질이다.


상기와 같은 방법으로 '서(恕)'를 살펴보자. 먼저 ① 용서하다 ② 인자하다, 어질다 ③ 동정하다의 뜻이 나온다. 그리고 '서'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그래서 직역하면 '같은 마음'이란 뜻으로,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여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마음이 같아짐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용서할 수 있고, 어질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서(恕)'란 타인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공감하는 도(道)이자, 감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의 덕(德)이다.


공자의 도(道)가 충과 서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결국 '나와 타인과의 조화'를 의미한다. 충(忠)이 나를 곧게 세우는 수직축이라면, 서(恕)는 타인을 품는 수평축이다. 나의 '충'이 진실하지 못하면, 타인을 향한 '서'는 위선이 된다. 내가 나를 다잡지 못하면 남을 헤아릴 수 없고,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결국 내 마음도 흔들린다. 그러니 충과 서는 각각의 둘이 아니라 하나, '자기를 바로 세움으로써(忠) 남에게 미치는 선함(恕)'인 것이다.


배려란 단지 눈치를 보는 소극적 행동이 아니다. '이 상황이 내게 닥쳤다면 나는 어떻게 느꼈을까?' 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나의 마음(忠)을 상대방에게 미루어(恕) 생각하는 이다. 그 한 걸음의 여백 속에서 사람의 품격이 생기고, 마음과 마음이 닿는 것이다. 이것이 곧 서(恕)의 시작이다.


나는 아직 내 마음을 온전히 붙잡지 못했다. 때로는 흔들리고, 비틀거리고, 중심을 잃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내가 지켜야 할 단 하나는 바로 '충'이다. 나를 속이지 않는 일, 나의 중심이 무너지지 않게 다잡는 일. 그리하여 언젠가, 나의 충이 진실하게 서는 날, 그 마음이 자연히 흘러넘쳐 누군가에게 따뜻한 ''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묵묵히 나의 마음을 붙잡고, 나의 길을 걸어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