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움은 어디서 출발하는가
자공이 물었다. "널리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제할 수 있다면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어찌 인(仁)에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聖)이로다. 요순임금도 이를 근심으로 여겼다. 무릇 인(仁)이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도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자 할 때 남도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가까이서 비유를 취하면, 그것이 인(仁)을 이루는 방법이다." — 『다산의 마지막 질문』 中
상기 공자의 대답 중에서 유독 마음에 오래 남는 구절은 이것이다.
"무릇 인(仁)이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도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자 할 때 남도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이 문장은 '서(恕)', 즉 '나의 마음을 미루어 남을 이해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서(恕)'는 단순한 관용이나 동정이 아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나'였다면 무엇을 원했을지, 무엇이 필요했을지를 깊이 헤아려 행동하는 것이다. 즉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라는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출발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이러한 '서(恕)'의 실천이 곧 '인(仁)'의 완성이라고 보았다. 즉, '인(仁)'이란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남의 마음에 비추는' 구체적 행위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실천은 지극히 어렵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에서 나와 실천까지 옮기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대개 남을 이해하기보다 오해하기 쉽고, 남을 세워주기보다 나를 앞세우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인(仁)'과 '서(恕)'를 실천하려 할수록, 오히려 내 안의 이기심을 발견하게 되는 모순에 직면하곤 한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잘 아는지 다산 정약용은 가장 현실적이고도 근본적인 실천법 하나를 제시한다.
바로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
우리는 종종 그 순서를 착각한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면서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않는다. 타인에게는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하면서, 스스로에게는 가장 가혹한 감독관이 되곤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진정한 따뜻함을 전하기는 어렵다. 내 마음의 그릇이 텅 비어 있다면, 남에게 퍼줄 것도 없는 법이다. 스스로를 미워하고 학대하면서, 남을 진심으로 감쌀 수는 없다.
따라서 '인(仁)'의 첫 걸음은 세상을 향한 거대한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작은 이해와 수용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껴주는 것. 이 단단한 자기 긍정이 바로 '인(仁)'을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된다.
이 사랑은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곳으로 흐른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부모와 자식, 친구와 연인에게로 점점 퍼져나간다. 이 작은 원이 차츰 커져가며, 마침내 낯선 이의 고통까지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가까운 관계에서의 공경과 배려가 없는 사랑은, 속이 텅 빈 강정과 같다.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어 금세 부서지고 만다. 『다산의 마지막 질문』은 이 지점에서 경종을 울린다.
“현명한 사람은 친밀할수록 공경할 줄 알고, 두려울수록 사랑할 줄 안다.”
우리는 종종 '가깝다'는 이유로, '친하다'는 이유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상처를 주곤 한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 충분히 된 사람은, 그 사랑의 가치를 알기에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욱 공경하고 예의를 다하게 된다. 진정한 사랑, 진정한 '인(仁)'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건네는 공경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공자와 다산이 말한 '인(仁)'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다움의 출발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