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길 위의 제자, 길 위의 스승

세상 모든 만남에서 배우고, 나 자신으로 가르친다

by 끄덕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중에서 선한 것은 택하여 따르고, 선하지 않은 것은 이를 보고 나를 고쳐나간다." – 『다산의 마지막 질문』



우리는 이 고전의 가르침을 '좋은 사람'에게는 배울 점을, '나쁜 사람'에게서는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으라는 도덕률로 손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명쾌해 보이는 가르침의 이면에는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재단하려는 위험한 함정이 숨어 있다. 사람을 '본받을 자'와 '경계할 자'로 나누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과연 한 사람이 절대적인 '선' 또는 '악'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성인(聖人)이라 부르는 위대한 인물에게서, 배울 점이 아닌 고칠 점은 정녕 하나도 없을까? 반대로 역사상 가장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에게서 단 하나의 선함이나 배울 점을 찾아낼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이 아닌 관념 속에서 살게 된다.


다산 정약용은 이 흑백논리의 한계를 명확히 꿰뚫어 본다. 그는 한 사람 안에 선과 악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공존한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과 고칠 점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의 태도다. 타인의 선을 발견하여 나의 것으로 삼고, 타인의 악을 거울삼아 나를 바로잡으려는 적극적인 의지. 다산은 바로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곧 스승이 된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가족, 직장, 사회라는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타인과 마주친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동료의 성실함에서, 사소한 약속을 어기는 친구의 허물에서, 심지어는 무심코 지나치는 이의 사려 깊은 배려나 거친 한마디 속에서도 배움의 계기는 숨어 있다. 나를 기쁘게 하는 만남뿐 아니라 나를 실망하게 하고 상처 주는 만남까지도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일상의 모든 경험은 스승이 된다.


또한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있다. 바로 세상 모든 것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듯, 나 또한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처럼, 나의 아이는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후배는 나의 태도를 통해 자신의 기준을 세운다. 나의 선함은 물론 나의 선하지 못함까지도, 누군가의 눈에는 이미 배움의 대상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처럼 언제나 배우는 동시에 가르치는 존재다. 이 무거운 자각을 잊지 않을 때, 삶의 모든 순간은 살아있는 학문의 장이 되고 일상의 모든 관계는 치열한 인격의 수련장이 된다.


끊임없이 주변에서 배우고, 배운 것을 삶으로 실천하며, 그 과정 속에서 다시 나를 성찰하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사람이 바로, 다산이 말한 진정한 "길 위의 제자이자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