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어른의 품격은 어디서 오는가

삶은 변명이 아니라 증명이다.

by 끄덕이다

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뜻이 크고 강인해야 한다. 짐은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을 자기 짐으로 삼고 있으니 또한 책임이 무겁지 않은가? 죽은 후에야 그만두게 되니, 또한 멀지 않겠는가?" - 『다산의 마지막 질문』 중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 :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과거 동양의 선비들이 평생을 걸고 붙들었던 삶의 태도가 응축되어 있다. 어쩌면 서양 귀족들이 지녔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역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일지 모른다.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그것이야말로 시대와 문명을 넘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어른의 품격'일 것이다.


증자의 말은 '임중이도원'의 의미를 더욱 깊이 헤아리게 한다. 이상을 짊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마음가짐을 넘어, 삶의 무게 전체를 기꺼이 짊어지는 일이다. 죽을 때가 되서야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다고 하니, 그 길이 얼마나 고독하고 험하겠는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비장함 속에서 가장 고결한 태도가 태어난다. 책임이 무거울수록, 가야 할 길이 멀수록 오히려 마음은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다.




이 '임중이도원'의 태도를 치열한 삶으로 증명해낸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유배지라는 절망의 공간에서도 그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몸은 비록 외딴 곳에 갇혔으나, 그의 마음은 현실의 절망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공부하고, 사색하고, 제자를 가르쳤으며, 마침내 방대한 저술로 자신의 뜻을 세상에 남겼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목민심서'다. 이 저서는 목민관이 백성을 어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록이자, 동시에 스스로는 실천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자가 남긴 절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산에게 책 쓰기란 단순한 학문 활동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와 스스로에게 바치는 마지막 의무라고 여겼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정약용과 같은 거대한 이상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모방할 필요도 없다. 왜냐면 각자는 서로 다른 처지에 놓여 있고, 각자가 꿈꾸는 꿈의 빛깔도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뜻을 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그저 하루하루의 작은 일상 속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꿈의 크기가 아니다. 삶을 마주하는 태도, 그것이 본질이다.


우리는 정약용의 삶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상을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끈기, 말로만 외치지 않고 행동으로 증명하려 했던 진심,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았던 그 묵직한 자세. 이러한 태도야말로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한 사람을 굳건하게 붙들어주는 본질적인 힘이다. 그가 살아낸 시간은 단순히 조선의 한 학자의 기록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다시금 되새겨야 할 '삶의 문장'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다시금 되뇌어 본다.


삶은 우리의 변명이나 해명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오직 '증명'뿐이다.
그저 말뿐 아니라, 살아낸 발자국이 우리를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