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길을 알면 헤매지않고, 뜻을 품으면 멈추지않는다

흔들리는 삶의 순간에서도 남는 것

by 끄덕이다

공자가 광땅에서 위태로운 일을 당했을 때 말했다. "문왕이 이미 돌아갔으나 그 글이 여기 있지 않은가? 하늘이 장차 이 글을 없애려 한다면 내가 여기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이 이 글을 없애려 하지 않을 것이니, 광땅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 『다산의 마지막 질문』 中



공자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의연했다. 그가 마주한 것은 날 선 칼날과 실존하는 생명의 위협이었다. 평온한 시대를 사는 지금의 우리가 그 서늘한 공포를 온전히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장면의 '위협'을 현대의 언어로 바꿔보면 어떨까? 목숨이 아니라 정신이, 평판이, 혹은 삶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순간으로 말이다.

예기치 못한 보증 사고, 믿었던 이의 배신, 공들여 쌓은 재정의 붕괴, 혹은 견고해 보이던 관계의 단절. 이러한 사건들은 당장 심장에 칼을 겨누지는 않지만, 때로는 육체적 고통보다 더 집요하고 깊게 영혼을 파고든다.

그럴 때 우리는 휘청거린다. 단순히 지치는 것을 넘어, 멈추고 싶고, 차라리 확 무너져 내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로 그 폐허 같은 순간에도 갈림길은 나타난다. 어떤 이는 주저앉고, 어떤 이는 뒷걸음질 치지만, 어떤 이는 기어이 한 발을 내딯고야 만다. 도대체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드는가?




지나온 나의 시간과 책 속의 이야기를 겹쳐 보았을 때, 결론은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지탱하는 나만의 중심'이 있느냐는 것이다. 자기만의 철학, 지켜야 할 가치, 그리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품고 있는가.

나 역시 폭풍우 속에 서 본 적이 있다. 깊이 절망했고, 맹렬히 흔들렸으며,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흩어졌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버텨냈고, 다시 일어섰으며, 지금도 걷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도달해야 할 곳을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향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비록 느릴지라도 하루에 단 한 걸음은 움직이려 애썼기 때문이다. 공자가 '글'을 붙들고 두려움을 이겨냈듯, 나에게도 놓지 말아야 할 나만의 '글'이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지금 이 순간 하루를 견디는 것 자체가 형벌처럼 느껴지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안다 말하는 것은 오만이며, 섣부른 위로는 때론 침묵보다 못함을 안다. 그래서 감히 '힘내라'는 말 대신, 내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던 다짐을 건네고 싶다.

살아내라. 삶에 의미를 찾아내라. 그리고 나아가라.

거창한 의미가 아니어도 좋다. 목표가 흐릿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아주 작은 점 하나를 찍는 일이다. 그 점이 구체적일수록 당신의 방향은 선명해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당신이 작게나마 지폈던 그 작은 불씨는, 위기의 순간 당신을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빛이 되어줄 것이다.

이것은 당신에게 건네는 말인 동시에, 여전히 흔들리며 걷고 있는 나 자신에게 바치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