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15살의 꿈, 그리고 65살의 대답

멈추지 않는 삶이 만들어내는 기적에 대하여

by 끄덕이다

산을 쌓다가 한 삼태기의 흙을 더 붓지 않아 산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도 내가 그만두는 것이다. 산을 쌓기 위해 한 삼태기의 흙을 쏟아 부었어도 일이 진전되었다면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 - 『다산의 마지막 질문』 중



시대가 변해도, 각자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 사람만의 눈부신 재능, 일확천금과 같은 거대한 기회 또는 그들을 둘러썬 남다른 환경 등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그리 결정적이지 않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힘이 그들을 이끌었다.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끝까지 목적지로 데려간 원동력은 바로 '나'라는 주체에 대한 확고한 신뢰였다. 일이 성사되는 것도, 흐지부지 끝나는 것도 결국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 자신이 결정한다는 태도. 그 자립성과 책임감이 삶의 방향을 정한 것이다.


상기의 구절도 같은 말을 전달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우공이산', 90세 노인이 흙을 옮겨 산을 지우고 길을 만들겠다는 무모한 도전의 이야기다. 우공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철없어 보이는 행동을 비웃었고, 불가능이라 손가락질했으며, 그의 나이가 많음을 들먹이며 조롱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비난과 비웃음의 화살이 때론 그를 아프게 했을지언정 그는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결국엔 그의 행동이 신마저 감동시켜 산이 옮겨졌다는 이 전설은, 기적이란 초인적인 힘이 아니라 '멈추지 않음' 그 자체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의 선조들은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90세 노인의 무모해 보였던 도전의 서사는 우리에게 명료한 메시지를 건네준다. 지금 이 순간, 흙 한 삼태기를 '더 붓는가' 아니면 '멈추는가'. 오직 그 두가지 선택만이 존재할 뿐인 것을.


정약용이 평생 강조한 철학도 이 지점에 맞닿아 있다. 자기 수양, 즉 '나'를 단단하게 일으켜 세우는 일. 우리는 타인의 평가와 시선 속에서 잠시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당사자는 결국 나 자신이다.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 짊어주지 않는다. 그 시작도, 과정도, 그리고 마지막 매듭을 짓는 것도 오로지 나의 몫이다.




언젠가 우연히 김승호 회장의 북 콘서트 영상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 강연에서 그가 던진 깊은 여운을 주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인정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두 명 있다면 누구일까요?"

당시 강연장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우자, 자녀, 또는 부모를 떠올렸다. 그러나 김승호 회장의 답은 단호하게 달랐다. 바로 '15살의 나'와 '65살의 나'라고 한 것.


돌이켜보면 그렇다. 15살의 나는 언제나 "미래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엉뚱한 실험을 멈추지 않는 발명가를 꿈꾸기도 했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나 정의를 수호하는 법관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 꿈의 이름은 매번 바뀌었지만, 떳떳하고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열망만큼은 선명했다. 그렇다면 훗날 65살을 맞이할 나는 어떠할까. 아마도 내가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보다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냉철하면서도 따듯하게 응시할 것 같다. 결국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심판관이자 목격자는, 타인이 아니라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인 것이다.




거세게 불어닥치는 외풍이나 내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오늘의 '내'가 떳떳하고, 확고하며, 스스로에게 당당하다면 잠시 방향을 잃어도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하루 하루가 흔들리는 불완전한 사람이니까.

그렇기에 멈추지 않으려 한다. 거창한 계획을 실천하는, 대단한 무언가를 하는게 아니어도 좋다. 그저 90세의 노인이 했던 것처럼, 작은 삼태기 한 삽을 다시 퍼 올리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오늘 글 한 편을 작성하는 것, 흩어진 생각을 문장으로 붙잡아 두는 것, 하루를 의미 있게 정리하는 이 모든 행동이 곧 '나아감'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65살을 맞이한 내가 내 앞에 서게 되는 날,

15살의 내가 그토록 꿈꾸던 삶을 성실히 살아냈노라고,

세찬 바람에 흔들려도 끝내 꺾이지 않았다고,

참 잘 버텼고,

참 잘 살았다고,

따뜻한 미소로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