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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KEUFeeLMYLOVE Dec 06. 2023

허리 꺾지 마세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편안한 필라테스의 비밀

생애 첫 필라테스 센터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필라테스가 나에게 좋은 건지 아닌지 아리송했다. 또 두 번째로 다닌 센터에서는 수업보다는 기합을 받으러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코끝이 시린 추운 겨울날에도 꼭 나가야 하는 훈련 같았다. 세 번째로 다닌 센터에서는 드디어 필라테스 수업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센터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 뒤로 나는 현재까지 필라테스에 푹 빠지게 됐다. 내가 필라테스에 빠지게 된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편안함'이다. 수업 후 나른하게 이완된 느낌이 너무 좋다. 뻣뻣하게 경직되어 있던 모든 근육들이 일시에 이완되고 나중에는 몸도 편안, 마음도 편안해진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똑같고, 같은 필라테스라는 운동을 배웠다. 그런데 수업 후의 느낌이 다 달랐다. 뭐가 달라서였을까? 



똑같은 필라테스를 배웠어도 수업 후 느낌이 달랐던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었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1)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다. 적어도 나에게는 50분 수업에서 부정문이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수업 후의 느낌이 달랐다. 추가로, 2) 충분한 발화량과 3) 시각화도 차이를 만들어냈는데 이도 함께 아래에서 살펴보겠다. 



1.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조지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자다. 책의 표지를 보면 검은 실루엣이 그려져 있는데, 제목을 본 뒤 이 그림을 보면 누구나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 레이코프는 이게 언어의 '프레임'이라고 설명한다. 말이 인식의 '틀'을 정해버린다는 것이다. 이 언어의 프레임을 필라테스에 적용시켜 보면, 


· 시선 바닥으로 떨어지면 안 돼요.
· 뒷목 주름 안 잡히게 해야죠.
· 목어깨 긴장 되지 않아요.
· 골반 흔들리지 않아요.
· 아니죠, 다시.


50분의 수업 시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것이 '아니'라는 부정문이면, 그게 계속 쌓이고 쌓여 필라테스가 하기 싫어진다. 수업이 전혀 즐겁지가 않고 고문같이 느껴져 결국 그만두게 된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생각하는 그대로이다." 그대는 온종일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대의 인식은 유익하고 부유해지는 생각에 집중되어 있는가? 아니면 주로 나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낙담하고 상처가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한 동작들이 계속 '아니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쌓이게 된다. 부정적인 생각은 굳이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눈덩이처럼 커진다. "역시 나는 운동에 소질이 없는 거야. 그니깐 필라테스는 더 젬병인거지."라는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내 무의식에 점점 노크하기 시작해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운동에 소질이 없다는 생각을 전혀 한 적이 없어도 말이다.


나에게 효과적이고 편안했던 방법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관심을 붙잡는 것이 행동을 결정하므로, 안 되는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를 계속 그 과정 속에 붙들어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성향이 있다. 그러므로, 좋은 결과에 에너지를 집중하면 의식도 바뀌고 좋은 결과가 나온다. 나의 경우에는 실질적인 목표를 특정 짓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 시선 바닥으로 떨어지면 안 돼요.
· 시선은 살짝 들어 거울 제일 끝 쪽 바라볼까요?

· 목덜미 주름 안 잡히게 해야죠.
· 정수리 더 길게 거울 쪽으로 보낸다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 목 어깨 긴장되지 않아요.
· 목 어깨 툭 편안하게 내려놓고.

· 골반 흔들리지 않아요.
· 배에 집중해 센터를 더 많이 사용할수록 골반의 흔들림이 줄어듭니다.

· 아니죠, 다시.
· 한 번만 더 해볼게요.


장애물만 집중하면 장애물만 보인다. 내 몸이 지시를 오해하지 않도록, 원하는 결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해야 '학습 능력'도 올라가는데, 긍정적인 생각은 사고가 확장되고, 부정적인 생각을 사고가 수축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우리 기억에서 많은 양의 지식을 떠올릴 수 있는 반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생각에서 떠올리는 것들을 수축시킨다. '아니'라는 부정어를 계속 들으면 당연히 내 몸과 마음은 점점 위축되지 않던가. 잘못된 동작에 계속 초첨이 맞춰지면 원래 나의 평소 기량을 발휘하기가 더 어렵다. 


어떤 말을 하고 듣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몸도 마음도 쉽게 변하다. 언어는 나의 마음, 행동을 바꿀 뿐만 아니 세상의 프레임도 바꿀 수 있다.



2. 충분한 발화량

아이들의 인지력은 엄마의 '언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EBS에서 아이들의 언어발달 실험을 했다. 아기와 엄마는 60개의 단어 함께 학습하고 난 뒤, 단어 퀴즈를 하는 것이었다. 먼저 21개월 아기들에게 60개의 단어를 하나씩 보여줬다. 한 단어를 인식하는데 A아기는 평균 1.14초가 걸린 반면, B아기는 0.84가 걸렸다. 한 단어를 인식하는 데 평균 0.3초만큼의 차이가 났다. 24개월 아기들은 더 차이가 나는데, A아기는 1.5초, B아기는 0.41초였다. 1.1초로 더 벌어졌다. 한 단어를 처리하는 속도의 차이가 세배가 넘는다. A와 B아기는 어휘수도 약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한 단어 평균 인식속도와 비교하면 관련이 있어 보인다. 즉, 어휘를 많이 알고 있는 아기가 단어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속도가 빨랐다. 


단어를 배울 때 엄마들의 말을 자세히 기록했다. A아기의 엄마와 B엄마가 사용한 문장과 단어에서 두 배가량의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B엄마의 발화량이 두 배 더 많았다. 이는 단어를 많이 알고 있고 단어의 인식 속도가 더 빨랐던 아기들의 경우와 정확히 일치한다. 많은 문장과 단어를 쓴 엄마의 아이가 언어수와 인식 속도에서도 월등히 앞선다.


나는 필라테스도 똑같은 것 같다. 운동에 'ㅇ' 자도 몰랐던 나란 사람은 21개월 아이와 똑같은 상황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계속 구체적으로 인지를 줘야 어느 순간! 아 ~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칠 때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윗몸일으키기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숨 마시고 내쉬면서 컬업! 올라와요! 마시면서 내려놓고.라고도 할 수 있지만, 


충분한 발화량은,

발바닥 누르는 힘 가지고, 꼬리뼈도 바닥에 잘 붙인 상태에서 준비. 입으로 하 내쉬면서 위쪽 척추부터 머리와 어깨를 들어줘요. 양 날개뼈 아래쪽이 약간 떨어지려 노력해 보기! 코로 숨 마시면서 머리를 천장방향으로 아주 길게 천천히 내려놓습니다. 


중간중간에도 힘! 힘! 복근에 힘줘야 줘! 보다는, 인지가 잘 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한다.

· 배는 평평해질 수 있도록 숨을 다 뱉어요.
· 양팔꿈치는 내 시야에서 살짝만 보이는 정도로.
· 목과 어깨는 편안하게 배에 집중.
· 꼬리뼈 더 바닥에 붙이려 노력.


충분한 발화량은 많은 설명 중, 어떤 설명이냐에 따라 개인마다 '번뜩' 인지가 되는 부분을 찾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필라테스는 동작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이렇게 충분한 발화량과 함께 움직이는 것은 뇌에서 인지가 계속해서 된다. 동작의 질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깊은 동면에 취해있던 나의 근육들도 조금씩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충분한 발화량이 쌓이면 나중에는 인지력에서 월등한 차이를 보인다. 


내가 지금 어떤 동작을 하고 있는지 잘 인지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동작을 함으로써 어디가 쓰이는지 0.41초 만에 알 수 있는 것이다. 




3. 시각화 (Visualization)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확실히 인지가 더 빨리 되는 느낌이다. "등을 말아요." 보다는 "등으로 큰 무지개를 만들어볼까요?" 하면 무지개 모양이 즉각 떠오르면서 등을 더 둥근 모양으로 만들게 된다. 무지개가 내 눈앞에 즉각 지나가고 기필코 무지개 모양을 만들어 보이겠다는 일념하나로. 또한 여러 감각을 깨우는 다채로운 표현에 뭔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 발가락 매트 찍어요.
· 발가락을 연못에 살짝만 담가보는 느낌으로 매트를 콕 찍어요.
· 복장뼈 더 들어 올려요.
· 내 목걸이 자랑하듯이 쇄골도 더 길어지게.
· 양손 옆으로 벌리고.
· 내가 천사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면서 양팔 옆으로 보내보기.




번외.

편안한 필라테스에서 너무 당연한 것이라 위 본문에는 굳이 넣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부드러운 수업 분위기다.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 수업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너무 이해를 강조해 '강압적'으로 가리키면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의 생리반응은 코르티솔이 부진피질로 분비가 된다. 혈류를 타고 전신을 돌아 브레인으로 곧장 간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해마로 들어가기도 한다. 뇌 부위 중에서도 해마는 특히 스트레스에 예민한 편인데, 스트레스를 받을 시 분비되는 코르티솔이 해마의 정상적인 기능과 영양 공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세포를 파괴한다. 이렇게 되면 주눅이 들고 하얗게 질러버린다. 머리가 하얘지는 것이다. 동작을 출력해야 하는데 멍~ 해지는 것이다. 인지가 느리고 동작을 못한다고 해서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강압적으로 해서는 인지력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가 되어버린다. 비눗방울 위에서 하는 아슬아슬한 곡예 같다.


초등학생은 브레인 발달과정에서 이해를 할 브레인 연결이 구조상 없을 수 있다. 필라테스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처음에는 동작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해하지 않고도 우리가 능숙하게 하는 것이 굉장히 많다. 자전거를 어떻게 타는지 원리원칙을 제대로 다 이해하고 알고 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나 누구나 조금만 연습하면 나중에는 다 탄다. 필라테스도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하는 동작이 맞는지? 이게 어떤 운동인지 모르겠다면 이해를 보류하면 된다. 이해할 때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 때는 이해를 보류한다. 안 된다고 주눅이 들고 설명이 귀에 안 들어온다고 해서 너무 많은 이해를 하려 애쓰다 보면 필라테스가 싫어질 수도 있다. 힘들면 싫어지고 결국 하지 않는다. 보류하고 나면 다른 길이 언제든지 반드시 나타난다. 일단은 근육을 사용해 보는 것이다.


근육이 익숙해지고 주변 정보들을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이해는 나중에 불현듯 오게 된다. 이해는 하는 게 아니라 오는 것이니까. 지금 달라지는 게 없다고 성급하게 포기하기에는 아까울 수 있다. 뇌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많은 이해를 하고 있는 중일 수 있기 때문이다. 뇌의 노력은 부드러운 수업 분위기에서 더욱 활발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나의 경우 강사님의 목소리 높낮이, 말투, 언어에 내 근육들은 다 반응한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개인마다 성향이 다를 수 있으므로 자신에게 더 잘 맞는 필라테스를 찾으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언어와 의식은 당연히 연결되어 있고, 이는 곧 운동의 결과에도 반영이 된다. 수세기 동안 철학자들은 세상에 대한 경험을 창조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 내 몸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더 편안해지고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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