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KEUFeeLMYLOVE Oct 17. 2023

3개월 카톡 없앴더니 남은 것

11년 동안 카톡을 사용하면서 단 한 번도 탈퇴한 적이 없던 내가 카카오톡 서버가 다운되던 날 탈퇴했었다. 작년 10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중단되었던 바로 그날. 나는 이탈자 200만 명 중 1명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손가락은 말릴 새도 없이 탈퇴버튼을 꾹 눌렀다. 카카오톡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니 이삿날 짐을 다 뺀 빈집처럼 고요했다. 


카톡을 폭파하듯 없애고 나니 빈자리가 느껴진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많이 난다. 카톡을 없앤 뒤 일상생활 중 잠깐씩 폰을 볼 때면 나는 몇 초씩 정-지되곤 했다. 막상 카톡을 없애니 나의 손가락은 길 곳을 잃은 것처럼 멈춰있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돼 버퍼링이 걸렸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니 여유가 생겼다. 뇌에 일거리를 덜 넣어줘서 생긴 여유공간이었다내 마음에는 '여백'이 생겼다. 


꼭 연락을 하지 않아도 카톡에 들어가 무의미하게 보낸던 시간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흩어져있던 시간들이 점차 쌓이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카카오톡을 삭제하고 브런치를 깔았다. 브런치에 도전할 생각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내가 뭘 하고 싶었더라? 하는 사색의 시간을 가진 덕분이었다.



딱 1년 전 요맘때쯤, 카카오톡을 탈퇴한 계기로 나는 지금까지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 3개월 카카오톡을 없앴더니 내 인생에 브런치가 생겼다.


계절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쨍한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처럼 혈기 왕성한 때가 있는가 하면, 창밖에 수북이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집 안에서 가만히 쉬고 싶은 겨울의 시간도 있다. 우리 인생의 시간은 저마다 제각각이라 바로 지금 겨울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한참 여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릎만큼 눈이 쌓여 발이 묶인 겨울의 시간에는 마음먹은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거나 마치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와 활동이 일절 없어지기도 한다. 정체된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시간도 한 번쯤은 필요한 것 같다. 자연이 언 땅을 녹이고 봄꽃을 피우듯이 우리 인생에도 활짝 피는 때를 맞이할 '준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 동안 겨울동면에 들어갔다가 나온 곰처럼 봄바람이 불어올 무렵 카톡을 다시 깔았다. 어우 사실 3개월 이상은 너무 불편해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인생에서 딱 3개월의 휴식으로 충분했다.


카톡을 없애는 '겨울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인생에서 딱 한 번쯤은 어떻게 해서든 겨울을 만들어 한동안 들어가 있다 나왔을 것 같다. 친구의 말대로 인싸인 척해본 작년 겨울은 눈이 한가득 쌓였었다. 다가오는 올해 겨울은 봄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글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 1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