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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시대, 사이드 프로젝트

새로운 규칙을 위한 생각들 #02 손호석 N프로젝트러

Scene #1. 소셜 계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0여명의 멤버들이 매달 일정 금액을 모아 가치 있는 프로젝트에 투자합니다. 단순히 돈만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 가는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어떤 의도로 진행되는지 함께 해석합니다. 그래서 더욱 의미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주로 일과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을,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오프라인에서는 대부분 서로의 삶을 풀어놓는데 시간을 씁니다.

디모스: 우연과 필연으로 만들어진, 신뢰 기반 공동체

Scene #2.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고자 하는 30대들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소셜미디어에 던진 한 마디에서 시작된 이 커뮤니티에는,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자신만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성공기라기보다는 성장기를 나누는’ 월 1회 모임에 점점 많은 이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기존 참여자의 추천을 통해 오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조직 안팎 다양한 삶의 모습에서 서로 자극을 받습니다.

월간서른: 30대를 위한, 30대에 의한, 30대의 모임.
사이드 프로젝트, 나의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


청년들의 삶이 팍팍하고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말은 이제 당연하게 들립니다. 성장의 기회가 자연스레 주어지지 않고, 대한민국을 만든 많은 원리와 법칙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변화의 필요성은 알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찾기 어렵고, 시행착오를 견디며 경험을 익힐 기회를 주는 조직은 많지 않습니다. 더 이상 조직이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지 못하고 스스로가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청년들. 그래서 조직 밖에서도 다른 방식의 관계를 경험하며 스스로의 특성과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조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도, 완전히 조직을 떠나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결과물을 거두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는 조직 밖 활동을 철없는 행동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조직에서 하는 일만으로는 나의 모든 특성과 바람을 충족하기 어려운 시대의 청년들에게는, 사이드 프로젝트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직장생활에서 자아의 분리를 경험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존중받는 관계를 맺고 싶은 누군가에게, 조직에서 직급과 직무로 규정되는 나 자신 말고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해하는 누군가에게 말이죠. 



사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본업보다 더 열성을 다하는 모습들이 종종 보입니다. 스스로 부여한 역할 속 자기주도성을 가지고 일할 때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주요 이유이지 않을까요. 때로는 우연한 만남 가운데, 때로는 하나의 키워드 속 시간이 지나며 점차 결이 맞는 사람끼리 분화하고, 그에 따라 관심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보면, 일터에서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던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사고방식의 사람들과 함께 하며 기존 생각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나에게 맞는 일의 감각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사람이 모인 조직과는 다른 경험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으며, 조직생활과의 시너지를 낼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사이드 프로젝트는 솔직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조직 내에서는 복잡한 이해관계나 상호경쟁 때문에 피드백이 아닌 지적질과 뒷담화가 돌아오는 경우가 많지요. 눈치 볼 필요가 적은, 느슨한 관계로 연결된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피드백과 이에 기반한 동료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프로젝트의 특성에 따라 일의 몰입도와 관계의 층위는 다양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니만큼 갈등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활동하며 스스로를, 혹은 새로운 관계를 발견할 수 있겠지요.


일의 의미와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행사들


청년들에게 사이드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일까요?

 

‘나는 왜 이 일을 하는’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왜-어떻게-무엇을’의 순서로 살아간다면 좋겠지만, 모두에게 그러한 삶을 강요하기에는 현실이 팍팍합니다. 직장에서의 선배 세대를 보며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 복지시스템 등 사회제도가 개인 삶의 안정성을 충분히 책임지지 못하는 시대, 성장의 기회와 방법이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 사이드 프로젝트는 관심사별로 연결된 사람들끼리 일의 감각을 공유하며 전환을 모색하는 또 하나의 방법, 나를 보다 나답게 하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청년 등 사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며, 동지보다는 동료의 감각으로 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한 조직에 헌신하며 큰 목적 외의 다른 가치들을 주변화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작은 일에서부터 재미와 의미를 느끼며 여러 가지 기술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 사회와 조직문화가 개인에게 많은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거나 암묵적으로 강요했다면,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상대적으로 부담을 내려놓고 가볍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상황과 개인의 특성에 맞는, 각자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방식으로 말이죠.


하나에 올인하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여두고, 유연하고 느슨한 네트워크가 일상이 되는 지금. 사이드 프로젝트는 이런 환경 속 청년의 감수성과 쉽게 조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기존 조직은 문제 투성이고 사이드 프로젝트 등 조직 밖 활동만이 옳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이분법적인 태도와 막연한 기도로 접근하다면 오히려 더 큰 실망이나 좌절을 겪을 수 있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대부분 작게 시도하고, 부담감을 갖지 않고, 일정기간 실험의 기간을 거칩니다. 그래서 희망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거대한 대의명분을 내세우기보다는 생활 속 실천 가능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적으로 실수에 너그럽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경직된 위계질서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과물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성장과 경험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이해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됩니다.


관심가는 이슈와 관련, 무언가 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이드 프로젝트에 기웃대는 분을 응원합니다. 불안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가운데 틀 안에 갖혀있지 않으려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단지 철없는 짓으로 폄하하지 않고, 각각의 활동을 이해하며 응원하는 좋은 동료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읽어보면 좋을 보고서:「사이드 프로젝트, 명함이 없어도 내 일입니다.」손호석 외, 2018, 서울시NPO지원센터.



손호석|N프로젝트러
좋으나 싫으나 오늘의 청년들이 해야 할 특별한 일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 변화를 읽어내고 미래 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일입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회 변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또 미래 사회를 살아갈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연재물 <새로운 규칙을 위한 생각들>은 그 고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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