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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들의 아슬아슬 플랫폼 달리기

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05_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지난 여름 정말 죽을 것 같이 더웠어요. 저희 배달 노동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야외 노동자들한테는 날씨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같이 일하는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너무 덥다, 너무 더워서 일하다가 쓰러지겠다.” 이렇게 힘든데 대책은 없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어요. 쉬는 날 무작정 피켓 하나 만들어 들고 광화문으로 나갔죠. 제가 일하는 맥도날드의 본사가 거기 있거든요. 그 앞에서 혼자 시위를 했어요. 이른바 ‘폭염수당’ 1인 시위.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라이더들의 여름


놀라우리 만큼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요. 관심을 보인 단 한 명이 있었는데요. 지나가던 초등학생이요. 걸어다가 저를 보고 멈추더니, 100원을 꺼내주더라고요. 마음은 고맙지만 이건 못 받는다고 했고요. 뭐, 그렇게 끝일 줄 알았는데. 그날 밤, <미디어오늘>에서 기사를 내주셨어요. 그리고 다음 날, 난리가 났어요. 엄청 많은 언론사에서 연락이 온거죠. 오늘도 하냐, 어디서 하냐…


기사 보기: 위기의 배달 라이더들 "폭염수당 100원 지급하라" 2018.7.26, 미디어오늘


사실 제대로 된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막상 관심 갖고 전화를 주시니 안 한다고 할 수가 없잖아요. 급하게 계획 짜고 장소 정하고 바쁘게 움직였죠. 제 시위가 갑자기 너무 큰 이슈가 되니까 부담도 느껴졌어요. 이 관심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 나 혼자 너무 과대 대표됐다는 생각, 결국 1인 시위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까지. 결론은 하나였죠. ‘노조를 만들어야겠다.’



‘안전’을 위한 당연한 요구


맥도날드 같은 사업장은 퇴근 시간이 다 달라요. 당연히 노동자들끼리 모이기 힘들어요. 그래도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사실 축구모임 때문이었어요. 진짜로 처음엔 축구를 하면서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모여서 떠들다보면 당연히 힘든 일, 나쁜 일 다 말하게 되잖아요. 우리 일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필요한 것들을 모아서 점장한테 요구해보자는 데까지 가게 됐어요.


예를 들면 라이더용 보호 장구는 다 공용이거든요. 이게 여름이면 헬멧에서 냄새가 장난이 아니예요. 서로의 냄새가 배기니까 아주 지옥 같죠. 정말 필요한 건데도 냄새가 심하니 쓸 수가 없어요. 팔꿈치, 무릎 보호대도 마찬가지고요. 사이즈가 다른데 다 같이 돌려 쓰니 막 늘어나거든요. 보호 장구 개인지급이 절실했어요.


이런 요구들을 점장에게 전하니까, 진짜로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났어요. 각자 쓸 수 있는 보호 장구를 지급하기 시작했거든요. 아마 맥도날드 전 지점에서 저희 합정 메세나폴리스 매장만 이럴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보통 일어나기 힘든,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죠.


가능성을 봤어요. 노조, 만들 수 있겠다. 이동 노동자 조합 ‘라이더 유니온’의 시작이었죠. 이제는 여기저기서 지원을 받기도 하고, ‘소모임’ 어플로 같은 배달 노동자들을 모으기도 하면서 제법 본격적으로 노조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아직 스무 명 정도의 규모지만, 100명을 모으면 정식으로 발족할 예정이에요.



‘배달’의 또 다른 얼굴, ‘플랫폼 노동’


앞으로 노조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의제가 하나 있어요. ‘바로고’, ‘부릉’, ‘배민라이더스’ 같은 배달 대행업체 들어보셨죠? 거기에 소속된 이동 노동자, 라이더들을 플랫폼 노동자라고 불러요. 사실 이건 더 심화된 비정규직 형태거든요. 지금까지의 비정규직이 사람을 1년, 2년 단위로 쓰다가 버릴 수 있었던 형태라고 하면, 플랫폼 노동은 사람을 하루 단위, 시간 단위로 쓰는 개념이니까요.


프랜차이즈에서 이동 노동자를 직고용 하는 경우엔 적어도 기본급을 받아요. 그런데 플랫폼 노동의 경우 배달 1건에 3000원. 기본급 수준의 임금을 받기 위해선 1시간에 최소 3건은 배달을 잡아야 하는 ‘전투콜’ 형태의 노동이 되죠. 주휴수당에 퇴직금, 연차수당까지 생각하면 4건을 쳐야 본전인 거고, 기름 값에 오토바이 관리비까지 치면 시간 당 5건은 쳐야 직고용 노동자보다 더 벌게 돼요. 더 빠르고, 더 위험해 지는 거예요.


딜레마는, 기업은 그렇다 쳐도 노동자도 이걸 거부하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노동 강도든 위험성이든 제쳐두고 당장 월에 얼마를 버는 게 중요한 게 노동자니까요. 최저임금 기본급만으로는 필요한 만큼 돈을 못 버니까, 오히려 노동자 입장에서도 플랫폼 노동을 선호하게 돼요. 


그들에게 노동 시간 단축이니 노동 안정성이니 하는 말은 너무나 먼 얘기일 수 있어요. 단편적인 수준의 활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애초에 플랫폼 노동의 흐름을 막을 수도 없고요. 결국 기본소득이나 고용보험의 확대 같은 굉장히 근본적인 지점을 건드릴 수밖에 없죠. 



노조원, 악플을 나눠 받을 사람들


노조가 있어도 어려운 일이죠. 노동자들끼리도 노동 형태, 노동에서 원하는 바에 따라 노동법을 보는 시각이 첨예할 수밖에 없고, 애초에 각자 고립된 상황의 이동 노동자들이 노조를 유지하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니까요. 만약 사업주 입장에서 노동자 한 명이 노조를 하는 게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겠어요? 해고를 할 필요도 없죠. 노동시간만 줄이면 당장 생계 유지가 안 되니 스스로 그만둘 수밖에.


그럼에도 우리에게 노조가 필요한 이유는, 내가 어떤 형태의 노동을 원하든, 돈이 먼저든 안정성이 먼저든, 노조 활동이 나의 생계에 얼마나 위험하든, 우릴 위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건 변함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힘들고, 오래 걸리고,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그걸 주장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건 노조뿐이고요.


그래서 계속할 거예요. 얼굴이 팔리는 게 문제라면 제 얼굴만이라도 팔아서 계속해야죠. 저라고 압박이 없진 않겠지만, 저항은 한 번 해봐야죠. 그래도 요즘엔 같이 ‘악플’을 나눠 받을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다행이에요.


라이더유니온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riderunionzzang



* 편집자의 말: 인터뷰 후, 그는 맥노날드 합정 메세나폴리스 점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가, 정확히 16일 만에 재계약 제안을 받았다. 만 23개월을 근무하고 나서다. 해고사유는 ‘오토바이가 모자라기’ 때문이었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맥노날드 해당 매장은 앞으로 배달대행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12월 24일, 성탄절을 앞두고 메세나폴리스 앞에서 모인다. 애초 예상했던 헤드라인은 “폭염수당 100원 주장했더니 한파에 잘릴 뻔”.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맥도날드에서 재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헤드라인의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노조하면 비정규직도 안 짤립니다". 시위는 계획대로 진행된다. 맥노날드와 같이 배달을 상시적, 지속적으로 하는 회사에서 배달 업무를 적극적으로 외주화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고 한다.


기획·편집_고정은 (청년자치정부준비단 파트너)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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