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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곧 건강이던 시대는 갔다

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04_마이리얼짐 이준우

몇 달 전에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로부터 강의를 요청 받았어요. 두세 시간 정도 운동을 가르쳐 달라는 건데… 생각해보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거예요. 안 그래도 다들 바쁜데, 강연 한번 듣는다고 그거 꾸준히 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운동을 하는 목적이 건강이니까, 일단은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 지 아는게 제가 뭐라 떠드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겠다 싶었어요.


관절이나 근육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움직임 검사’란 게 있어요. 강연 당일에 참가자를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했는데요, 결과가… 그냥 취업 준비하는 평범한 20대, 30대들이었는데 거의 모든 분들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다고 나왔어요. 이대로 10년만 지나면 그대로 수술실 가야할 것 같은 그런 상태요.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20대나 30대는 젊잖아요. 몸에 부담이 있더라도 일단 활동해요. 쭉.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이미 삐그덕거리고 있는 거니까, 나중이 정말 걱정돼요.

‘삐그덕’거리는 요즘 청년-
겉 말고 속 위한 땀 흘리는 ‘진짜’ 체육관 없나요


우리 사회가 아직 체육에 익숙하지 않아요. ‘체육’하면 이미지가 좀 한정적이잖아요. 특히 체대 같은 경우는 체벌이나 얼차려, 비리 같은 부조리한 이미지가 굳혀 있기도 하고.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일을 시작했어요. 체육전공생들이 땀 흘리고 공부하는 공간이 바로 체육관인데, 우리 사회엔 진정한 체육관이란 게 없는 것 같아서요. 처음엔 체대생들 위한 이벤트를 열고, 공부하는 스터디도 운영했어요. 그러다 회사까지 차린 게 지금의 ‘마이리얼짐’이에요. ‘나의 진짜 체육관’. 체벌, 얼차려, 부조리 없는 체육관. 우리가 한 번 그 체육관을 열어보자 했죠.


그런데 ‘진짜 체육관’이 필요한 게 체육인들 뿐만은 아니더라고요. 운동이 필요한데 시작할 생각을 못하는 사람들, 운동을 하고는 싶은데 뭘 어떻게 할지 모르는 사람들, 수술을 해서 재활이 필요한 사람들, 그냥 동네헬스장이라도 다니고 싶은데 괜히 막막한 사람들까지. 그런 분들을 겨냥해서 <득근득근 운동 센터>라는 걸 기획하고, 운동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죠. 운동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게 가르쳐주는, 그러면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헬스장 PT 수업처럼 부담스럽지는 않은.


끝없이 뒤로 밀려나는 ‘운동’, 우선 순위 앞에 둘 순 없을까


센터를 연지 2년이 됐는데, 저희 고객은 사실 청년보다 중장년층이 많아요.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요가 수업 같은 곳 가기가 좀 부끄럽다는 거죠. 청년들은 수업을 열심히 나오다가도 당장 할 일도 놀 일도 많으니 출석률이 뚝뚝 떨어질 때가 많고요. 자연스럽게 저희도 중장년층을 주 고객으로 생각하게 됐죠.


그런데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이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나니까 생각이 바뀌었어요. 청년들은 분명히 운동이 필요한데, 자기가 운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요. 혹은 그걸 알면서도 더 중요한 일들이 있으니까 운동을 끝없이 미뤄요.


건강이란 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잖아요. 체육은 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고요. 그런데 두 요소 모두 우선순위에서 밀려요. 특히 40대, 50대만 되어도 여기저기서 건강검진이 들어오는데, 청년들은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해 볼 기회 자체가 별로 없거든요. 청년 건강 지표라고 나오는 걸 봐도 자살률이 몇 프로다 하는 얘기뿐이죠. 청년들의 생활습관이 어떻고, 그래서 어떤 건강 문제를 겪는지,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해요.

헬스장 ‘선수’들에게 주눅들지 말고 나만의 운동을 시작하자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스포츠는 엘리트 스포츠 성향이 너무 강해요. 직업을 가지기 위해 전문적인 코스를 밟는 스포츠요. 학생 때부터 ‘체육을 하거나, 입시를 하거나’로 구분돼 버리죠. 계기가 많이 부족해요.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 지도 잘 모르고요. 접근성 좋은 헬스장만 가도 주변의 울끈불끈한 ‘선수’들 때문에 주눅이 드는 게 사실이잖아요. 남성들은 그래도 스포츠를 놀이로 즐기는 문화가 있는데, 여성들은 교복부터 치마를 입으면서 체육활동이 뚝 떨어져요. 어쩌면 그래서 여성들이 필라테스나 요가로 몰리는 걸지도 몰라요.


운동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해요. 운동이란 게 굳이 살을 쫙 빼거나 근육을 쑥 만드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깨자는 거죠. 계단을 올라가는 걸어 올라가는 생활습관으로도 충분히 운동을 시작할 수 있어요. 미용 목적보다도, 최소한의 건강을 갖추기 위한 생활체육 말이에요. 이게 앞으로 <마이리얼짐>이 할 일이에요. 이 사람들한테 진짜 필요한 운동이 뭔지, 청년들이든 체육인들이든 직접 만나보면서 방법을 찾아보려 해요. 일단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 토론하고 연구하는 모임을 준비 중이에요.


아, 그런데 저도 사실 건강검진 받아본 적 없거든요. 취업을 한 적 없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보건복지부에서 20대, 30대도 국가건강검진 받을 수 있게 한다고 발표했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에요. 건강은 정말 중요한 문제거든요. 늘 첫 번째 순위로 올려놓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가.



마이리얼짐 득근득근 인스타그램 dgdg.kr

마이리얼짐 득근득근 홈페이지 dgdgkr.modoo.at 



기획·편집_고정은 (청년자치정부준비단 파트너)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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