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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대변하지 않는 존재를 대변하는 것

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03_청년유니온 나현우

2013년에 성북구에 있는 한 도미노피자 매장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저는 대학을 안 갔’었’거든요. 왜 과거형이냐면, 대학을 늦게 갔어요. 남들보다 3년 정도. ‘비진학’ 청년으로 3년을 보낸 거죠. 대학생이 아니면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배달이나 서빙, 판매 정도. 특별한 숙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서비스 노동이요.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거죠. 비진학청년의 삶이 대부분 그래요.


요즘은 ‘30분 배달제’ 없잖아. 너 편하게 일하는거야.


배달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았는데 10일치가 입금이 안됐어요. 따지니까 “일을 배우는 기간”이라 못 주겠대요. 말이 돼요? 오토바이 운전해서 주문한 곳까지 배달하면 끝이잖아요. 돈 받으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다 ‘청년유니온’(이하 청유)을 알게 됐어요. 


그 때 느꼈던 건, 살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내 권리를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다는 거예요. 저 같은 비진학청년은 특히나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로 내보내 지니까, 이런 문제가 닥쳤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해요. 복잡하니 그냥 손해보고 넘어가거나, 아니면 아주 갈등적인 상황으로 만들어버리거나.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거죠. 


사실 내가 무언가 보장 받을 수 있는 권리가 확실히 있다는 생각이 들면 차분해 지거든요. 감정 써가며 싸울 필요가 없어요. 예를 들어, 노동청에 전화 걸어 신고하면 돈을 받아낼 수 있는데 그런 걸 모르니 사장이랑 무작정 감정적인 대화를 하거나 티격태격 싸워버리는 거예요. 암튼 저는 운이 좋았어요. 청유에서 많이 도움 받았거든요. 결국 돈을 받아냈죠.

‘도미노피자’ 시절에 같이 일하던 형들이 그러더라고요. 

‘30분 배달제’ 있을 땐 정말 지옥이었다고. 

넌 편하게 일하는 거라고. 


주문한 지 30분이 넘어가면 피자값을 물어줘야 하는데 이게 배달하는 사람 임금에서 깎이는 거예요. 어떤 진상들은 30분을 넘기려고 일부러 문을 안 열어주기도 하고요. 배달 나간다고 하면 거의 두세 판씩 들고 나가니까 한 집 당 15분 내로 방문해야 하는 거예요. 거기에 피자 만들어지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고. 신호 지키면서 가는 건 불가능이에요. 목숨 걸고 하는 거죠. 


알고 보니까 청유에서 이 ‘30분 배달제’를 없애는 운동도 했어요. 결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죠. 이래저래 감명 받아 조합원으로 활동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상담 같은 조금 어려운 일도 맡았어요. 제가 대학을 다니다 말았는데, 대학 다닐 때 법을 전공했거든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제가 가진 지식도 이용하는 일이 보람되고 즐거웠어요. 그게 점점 더 깊어져 상근 직원이 되었고 지금은 청유에서 기획 일을 하고 있어요.


비진학청년도 삶의 ‘폭’ 넓히는 경험해야 해요.


대학을 안 가고 바로 일터로 진입하게 되면 사회적 관계가 일터 안에 갇혀요. 대학생은 동아리도 있고, 대외활동도 있잖아요. 그러면서 자기만의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어요. 그런데 비진학청년은 접촉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너무 적어요. 또 대학을 가지 않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는데, 그런 이유와 상관 없이 ‘비진학’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는 큰 경제적, 정보적 격차를 줘요. 특히 일자리를 찾을 때 높은 벽을 느끼게 되죠. 겪어봐서 잘 아는 문제예요. 


비진학청년들과 모여서 이런 얘기를 터놓고 해보고 싶어요. 함께 처지와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턱 없이 부족하니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일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같이 답도 찾아보고요. 개인의 문제인지, 구조의 문제인지도 토론해보고. 또 누구도 대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누가 대변해야 하느냐는 고민도 함께 나누고요. 이 이야기들이 정책으로도 연결되면 더욱 의미 있겠죠. 그런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죠. 하다못해 ‘한유총’ 같은 데도 있잖아요.


청년들은 자신을 대변하는 조직을 가질 기회가 거의 없어요. 원래대로라면 정치인들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예전에 김무성 씨가 월급 떼인 아르바이트생한테 그런 말 한 적 있어요. “인생의 좋은 경험했다 생각하라”고. 그게 아니면 이런 반응인 거죠. “네가 세상의 뜨거운 맛을 보았구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좋은 경험’이라 여기고 넘어가야 하는 사회는 이상한 거죠. 


최근에 논란이 됐던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 같은 데 보세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열정을 다해요. 모양이 어떻든 일단 유치원 원장님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잖아요. 


좀 웃길 수 있지만, 그 자체는 배울 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한테도 이런 조직이 필요하거든요. 청년의 이익과 주장을 정치적으로 관철시키는 조직이요. 예전엔 대학 총학생회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대학생들도 학생회가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로 진출하면 그 마저도 전무하고요. 저도 청유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희 만으로는 부족해요. 세상엔 수없이 다양한 현장과 청년이 있으니까. 청년의 진짜 현실을 반영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이 더 많이 늘어나야 돼요. 그럼 뭐라도 달라질 거예요.



청년유니온 홈페이지 youthun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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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 트위터 union1030



기획·편집_고정은 (청년자치정부준비단 파트너)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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