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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불쌍하거나 혹은 괘씸하거나

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06_미스핏츠 이수련

미디어에서 청년이 다뤄지는 방식은 보통 두 가지예요. 불쌍하거나, 괘씸하거나. 매년 선거 시즌이나 연말 연초가 되면 ‘청년’ 기사가 쏟아져요. 대개 비슷비슷한 취재 아이템으로, 그야말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아요. 청년이 이렇게 열악하게 산다, 얼마나 불쌍하냐, 청년이 이렇게 선거를 안 한다, 얼마나 괘씸하냐. 저희는 언론이 보여주는 그런 모습들이 청년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청년은 대부분 진보인데 청년이 투표를 안 해서 큰일’이라는 식의 프레임만 봐도 그래요. 청년들만 투표를 안 한다는 이미지도 문제지만, 청년 안에서도 정말 다양한 성향이 공존하거든요. 트위터나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보면 당연히 제1야당은 정의당이에요. 그런데 선거결과는 아니잖아요. 심상정이 누군지도 모르는 청년이 있고, 딱히 부자가 아니어도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청년이 있어요. 보수가 진짜 청년이란 얘기가 아니고, 청년들도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청년 안엔 너무나 다양한 얼굴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게 지금은 괘씸한 청년, 불쌍한 청년 등 양극화된 이미지에 묶여있는 거죠. 그래서 청년들의 다양한 양상을, 다양한 생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성세대의 취재 아이템으로 소비되는 청년의 모습 말고,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우리의 언어로 직접 전달해보자. 청년 독립 미디어 미스핏츠가 탄생한 배경이에요.


세상의 모든 핏하지 않은 목소리를 담다


“세상의 모든 핏하지 않은 목소리를 담겠다.” 미스핏츠의 기조에요. ‘청년’을 먼저 얘기했지만 사실 이 세상엔 청년 말고도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집단이 많아요. 대표적으로는 ‘퀴어’, 그러니까 성소수자의 경우가 그렇죠. 미스핏츠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이슈이기도 한데요. 사회가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청년의 그것처럼 크게 두 가지에요. 혐오스러운 존재, 혹은 불쌍한 존재.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방식이나, 퀴어 이슈를 다루는 언론의 방식이나, 방향은 다를지라도 단편적이라는 점은 비슷하죠. 젠더 카테고리 하나로는 사람을 설명할 수 없어요. 성소수자 A, 성소수자 B, 성소수자 C ... 성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A, B, C들은 사실은 굉장히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개인이니까요.


그래서 그 개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글로 남기는 작업을 했어요. 당사자를 만나 인터뷰 하고, 관련 행사를 취재하고, 직접 오프라인 행사를 열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말하자면 ‘퀴어서사 아카이빙 프로젝트’요. 그 결과물로 2017년엔『새삼스레』, 2018년엔『젠더 유니버스』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기도 했고요. 막연하게 그렸던 지향점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다른 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낳았죠. 이제 이 이야기들이 다시 퍼지고 퍼져서, 그들을 보는 단편적인 시선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낼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금세 사라져버리는 수많은 ‘청년’ 단체들


청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모두가, 미디어를 통해 대상화된 이미지 말고도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얘기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고 생각해요. 엄청나게 큰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에요. 미스핏츠에 들어오고 활동을 이어나가는 지금도,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하고 싶은 걸 찾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힘들 때도 많아요. 이걸로 큰돈 버는 것도 아니고. 저희도 이제야 사비 안 들이고 활동할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 아무도 우리 얘기를 안 해주니 우리가 직접 해보자고 모였지만, 그걸 위해 개개인이 소모되는 측면은 분명 존재하죠.


저희를 비롯해 다른 청년 단체들도 큰 고민일 거예요. 대부분 자기 시간, 돈, 에너지 써가며 활동을 하는 처지이니 금방 지치고 지속가능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먹고 살기 위해 취직을 하면 시간 내어 활동하기는 힘들어지고요. 그렇게 몇 명만 나가도 단체에는 큰 위기가 찾아와요. 활동 1~2년 사이 사라지는 단체들이 정말 많아요.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청년 단체, 청년 미디어 생태계에 위기가 왔다는 말들도 나와요. 하지만 활동을 멈췄다고 그걸 탓할 순 없죠. 중요한 건 생태계예요. 당사자들이 자신의 말을 전할 수 있는, 그리고 그 말들이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필요한 거죠.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인 거고요.

‘비주류’ 말하는 우리는 ‘주류’, 괜찮을까?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어요. 금전적이거나 상황적인 외부의 한계 말고도, 저희 내부의 한계를 느끼기도 해요. 가령 저희 같은 청년 독립 미디어에서 일하는 분들도 면면을 보면 대부분 서울 중심, 수도권 대학 출신들이거든요. 수도권, 대학교, 이성애 등 주류 말고 그 외부의 목소리를 담는다면서 저희 멤버 대부분은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이성애자죠. 대기업도 가고. 우리가 “핏하지 않은 목소리를 담는다”지만 진짜 그러고 있나?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기만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작은 무언가라도 만들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양방언을 좋아하는데요, 밴드 세션이 독특해요. 국적도, 성별도 다양하거든요. 21세 천재 여성 드러머에 중년 남성의 기타리스트, 이런 식으로. 양방언은 그 중심에서 피아노를 치는데, 혼자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세션 각자가 동시에 빛나요. 그렇게 매력적이고 멋있는 공연이 완성돼요. 미스핏츠도,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도 그런 모습이면 좋겠어요. 조화롭게 각자 빛을 내면서 혼자라면 할 수 없었던 것도 해보고. 


한 마디로 ‘긍정적인 균열을 내는 일’, 저는 그런 일을 계속 하게 될 것 같아요.



미스핏츠 홈페이지 http://www.misfits.kr

미스핏츠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isfitskr 



기획·편집_고정은 (청년자치정부준비단 파트너)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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