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08_ 공덕동하우스 홍혜은
‘결혼’을 바라보는 환상에 대한 근본적인 해체가 필요해요. 로맨스에 대한 환상, 그리고 결혼이 안정적인 삶의 유일한 조건이 된다는 환상. 작년 말, 통계청에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48.1%밖에 되지 않았어요. 조사대상을 ‘미혼’으로 줄이면 더 떨어져요. 남성은 36.3%, 여성은 22.4%. 이 정도면 “결혼은 선택이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봐야죠.
참고기사: "결혼 해야한다" 미혼남녀 비율, 8년새 절반으로 '뚝' , 연합뉴스, 2018.11.10.
‘결혼하지 않는 삶’에 대한 상상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이 되면서 최근엔 ‘생활동반자법’ 이슈가 떠올랐어요. 그 배경에도 이런 사회적 흐름이 있는 거죠.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고 앞으로도 늘어날 텐데, ‘결혼을 하냐 안 하냐’로만 나뉘는 지금의 가족제도로는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렇다면 이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해야 할까요? 답이 잘 안 나오죠. 애초에 ‘결혼하지 않는 삶’이란 게 잘 상상이 안 돼요. 여기부터 문제예요. 우리 사회가 한 번도 제대로 그려본 적 없는 그림이거든요. ‘비혼’에 대한 상상력 자체가 빈약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더 넓게 상상할 수 있도록, 보여줘야죠.
저는 지금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를 운영하고 또 살고도 있어요. 공덕동하우스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담은 계간 「공덕동하우스」도 펴내고 있고요. 「공덕동하우스」는 가족, 우정, 공동체, 연애, 결혼 등에 대한 저희의 고민이 담긴 책자에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 그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비혼, 화려한 싱글? 고독한 노후?
비혼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역사는 10년이 채 안됐어요. 그 전에는 ‘미혼’ 정도의 표현밖에 없었죠.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미혼과 구별되면서, 또 정치적 의미로서 ‘비혼’이란 단어가 떠올랐어요. 요즘은 정말 ‘핫’한 키워드가 됐죠. 하지만 이 단어를 보는 시선은 별로 나아가지 못했어요. ‘결혼의 반대가 비혼’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 말이에요.
비혼을 상상했을 때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도 한정적이죠. 하나는 화려한 싱글. 노후가 걱정되지 않을 만큼 능력이 있고, 외로움도 타지 않고, 그래서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며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사람. 다른 하나는 “저렇게 살면 안 돼”에서의 ‘저렇게’죠. 외롭게 살다가 고독사하는 노인이 되고 말 거라는 상상.
그런데 그 두 가지 모습 이외에도 비혼엔 수많은 모습이 있거든요.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사는 삶. ‘한부모 가정’ 혹은 ‘위기가족’ 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삶. 애인, 형제, 친구관계로 얽힌 몇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거주하는 삶 등.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삶은 잘 상상되지 않아요. 중산층 수준의 이성애 남녀가 결합해 무난하게 아이 한둘 낳고 사는 가족 형태, 즉 ‘정상가족’ 형태를 사회의 ‘기본값’으로 놓고, 비혼을 그 반대편에 놓인 이성애자 개인으로 상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혼주의 이슈에서 생활동반자법과 함께 많이 이야기 되는 개념이 ‘가족구성권’이에요. 정상가족 바깥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인정하고, 이들에게도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거죠. 주거, 의료와 같은 삶에 필수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누릴 수 있게요.
가족구성권, ‘구성’만큼 ‘해체’의 문제도 중요
가족구성권 논의의 핵심이 누군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구성할 수 있게 하는 데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거기에 관점이 치우치면 오히려 더 나은 논의가 진행될 수 없어요. 가족 구성만큼 중요한 문제가 가족 해체의 문제거든요.
현재의 가족제도가 폭력적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가족을 해체하기 너무 어렵다는 점이에요. 결혼제도 바깥으로 나갔을 때의 불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해체가 필요한 가족이라 해도 ‘차라리 지금이 낫다’가 되죠.
가정을 뛰쳐나가는 자녀, 가부장의 보호를 벗어난 아내가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지금의 결혼과 똑같은 구속력을 가진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낸다고 이 폭력의 문제가 해결될까요? 가족구성권이란, 어떤 공동체를 구성할 권리기도 하지만 그 공동체가 안전하게 해체될 권리기도 해요.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고 필요에 따라 해체할 수 있다는 것
생활동반자법만 만들어진다고 끝나지 않아요. 복잡하고 다양한 배경들을 함께 고민해야 하죠. 다양한 삶의 모습에 따라, 비혼이 적용되는 방식도 현저히 다르거든요. 가령 지역에 따라 생각해봐도 격차가 있어요.
예를 들어 중공업 위주로 돌아가는 도시에선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힘들어요. 애초에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자리가 한정 되거든요. 결국 ‘가족임금’을 받는 가장과 결합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 이 지역 여성들에게 결혼제도가 불합리하다고 외치는 게 당장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지역, 퀴어, 가족형태, 청년, 여성... 수많은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겠죠. 중요한 건 사람들이 결혼을 떠나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고, 필요에 따라 해체하며, 그 안에서 최대한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지역, 성별, 성 정체성, 혹은 경제적 계급 같은 것들과 상관없이요. 누군가 그렇게 살고자 할 때, 지금의 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 비어있는 부분을 발굴하고, 거기에 제도적인 지원과 보호를 요구하는 게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 연애, 결혼, 공동체에 대한 사람들의 문제의식을 나누는 자리가 계속 만들어져야 하고, 그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논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두 가지가 함께 이뤄져야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오겠죠.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일이 될 거예요.
기획·편집_고정은 (청년자치정부준비단 파트너)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