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09_LORE 임동선
사토시의 지갑을 찾아라!
참가자는 네 자리수의 번호표를 받는다. 그 번호표의 숫자는, 자신이 소유한 가상 지갑의 주소 좌표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가 가진 번호표, 그리고 따로 마련된 트레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번호표들 중 하나는 ‘사토시의 지갑’ 주소다. 사토시는 비트코인의 개발자이자 블록체인 기술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인물.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베일에 가려진 사람이다. 이 게임은 바로 그 사토시의 지갑을 찾아내는, 일종의 방탈출 게임이다.
사용자에겐 총 일곱 가지의 힌트가 주어진다. 사용자들은 그 힌트를 가지고 사토시의 지갑 번호를 유추해야한다. 자신의 유추 결과를 가지고 다른 사용자들과 번호를 ‘거래’하는 것. 거래를 반복하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 ‘사토시의 지갑’을 소유한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복잡한가요? 지난해 ‘로어’의 비트코인 10주년 파티에서 진행했던 이벤트예요. 단순히 방탈출을 즐기려 만든 게임은 당연히 아니고요. 사용자들 간 거래 행위 과정에서 이루어질 네트워킹도 목적이지만, 무엇보다 ‘비트코인’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체험 교육’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게임이에요. 지식 콘텐츠 제작을 위해 뭉친 저희 ‘로어’와 암호화폐 관련 커뮤니티 그룹이 함께 기획한 파티에서 이 게임을 선보였죠.
암호화폐 북클럽에서 미래 지식 콘텐츠 커뮤니티로
처음 시작은 블록체인이었어요. ‘로어’의 시작이 암호화폐와 관련한 북클럽이었거든요. 블록체인, 암호화폐라 하면 대부분 그것의 경제적인 여파나 기술적인 부분에 치중한 얘기만 해요.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암호화폐가 어떤 형태로 발전해온 기술인지, 그리고 그 기술이 어떤 세상을 그리고 있는지 등 사회적인 맥락에 더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암호화폐가 가진 역사적이고 사상적인 배경을 두고 토론을 하는 북클럽을 열었던 거죠.
그런데 막상 토론회를 열어보니, 제 생각대로 되지는 않더라고요. 클럽에 모인 분들의 지식 수준도 각각 차이가 있었고, 무엇보다 암호화폐에 대해 원하는 정보가 각각 다르다 보니 제가 그렸던 그림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왔어요.
제 실수였죠. 많이 아쉬웠어요. 저는 저와, 다른 사람들 모두가 대화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배양하고, 어떤 통찰력을 얻어 가길 바랐거든요. 북클럽을 마무리한 뒤에도 그 막연한 기대엔 변함이 없었어요. 그래서 애초의 방향을 선회해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그게 바로 지식 콘텐츠를 통한 소통 매체이자 커뮤니티, 지금의 ‘로어’에요.
주제는 암호화폐를 넘어 좀 더 넓게, ‘미래’로 설정했죠. 우리 모두 미래에 대해 관심도 불안도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미래를 살아갈 우리가 알아야 할 상식, 혹은 사고방식에 대해 함께 배워보고 싶었어요.
이제 다른 방식의 ‘교육’을 상상할 때
지식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서, 단순히 전달 가능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오히려 계속해서 쏟아지는 논문이나 뉴스를 베이스로,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게 목적이죠.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정보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이 기존의 교육 틀이라면, 저희는 그 틀을 벗어나 말하고 듣고 소통할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하는 거죠.
물론 지식의 ‘전수’가 일어나야 그걸 토대로 뭔가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 다음도 상상해야 해요. 지식 전수에 그치지 않고, 이후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직접 경험하고 실천해 보는 것. 다시 그걸 토대로 어떤 결과물까지 만들어내는 것까지.
하나의 주제로 이 네 가지 과정을 관통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가 스토리를 입혀낸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위에서 언급한, ‘사토시의 지갑을 찾아라’도 그 일환이고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교육의 규칙
학창 시절엔 한국 교육체계의 권위주의에 반감을 가졌어요. 거기서 상처도 많이 받았고요.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유학을 결심했는데, 미국에서의 고등학교 생활도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방식의 교육은 없었죠. 실망감에 차라리 대학을 가지 말아야겠다, 생각도 했는데 다행히 새로운 교육을 접할 수 있는 대학을 들어가게 됐어요.
제가 다녔던 세인트존스대학의 강의는 좀 다르거든요.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그걸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거나 하는 식이요. 교수님은 ‘강의’가 아닌 ‘발제’를 하고, 그 발제 내용에 따라 각자가 이해한 것들을 나누는 교육법. 정말 다양한 얘기가 나와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들이 드러나기도 하고, 또 다른 시각을 통해 절충점을 찾게 되기도 하고. 그 학교에선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교육이란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새로운 교육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다른 팀원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자동차 공장에서 체험 학습을 했던 경험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 생각하는 친구가 있고, 위치 기반 서비스를 접목해 몇 백 명이 함께 수행하는 게임을 교육에 접목하면 어떨까 하는 친구도 있죠. 다들 현업이 있고 저도 군대에서 통역장교로 일하고 있지만, 모두 새로운 교육, 즉 ‘지식 콘텐츠’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지금의 ‘로어’를 통해 저희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새로운 ‘교육’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손쉽게 정보를 전달하는 콘텐츠보단 좀 복잡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미래’라는 더 큰 담화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에게도 더 크고 새로운 ‘교육’의 규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그로 끌어서 사람들 왕창 모을 생각은 없어요. 단 한명이라도, 저희 주제에 공감한다면 함께 하고 싶어요.
기획·편집_고정은 (청년자치정부준비단 파트너)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