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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진 빚 갚기

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11_청년정책네트워크 문지혜

세상을 위해 일하고 싶지만… 괜찮을까?


대학교 2학년 때 야학을 했어요.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고, 그냥 친구들과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해보니 야학이란 게 굉장히 노동 강도가 센 봉사활동이더라고요. 학생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다보니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교육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저는 학교에서 시험기간인 거예요. 당장 급한 시험공부도 못하고 야학 활동을 해야 했어요.


고민이었어요. 여기서 봉사하는 것 보다 내 공부해서 앞길부터 챙기는 게 맞지 않을까? 아프거나 바쁘더라도 여기 일을 먼저 열심히 하는 게 맞는 걸까? 결국 내 인생은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을 텐데. 결국 내가 시작한 봉사활동도 중요하지만, 내 학점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죠. 모든 걸 포기하고 열의를 쏟아 부울 순 없다고 말이에요.

4학년이 되고 또 다른 방향의 고민을 시작했어요. 2016년 여름,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시위가 있던 시기였거든요. 거의 모든 학생들이 시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지만 당연히 사람에 따라 참여도도 기여도도 달랐어요. 정말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부운 사람들이 있었고, 참여를 하더라도 자기 삶을 지켜간 사람이 있었죠.


당시 시위에서 시작된 이슈로 세상이 뒤집혔었죠? 그래서 그런지 어딜 가나 이대생이라 하면 칭찬을 받았던 것 같아요. 큰 일 해냈다고. 민망했어요. 저는 후자의 사람이었거든요. 난 이 변화에 많은 기여를 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걸 위해 온몸을 바친 학생들은 따로 있는데. 내가 이런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인건가? 스스로 의문이 들었어요.


시위을 경험하기 전에는 정치혐오가 심했어요. 사회학과 전공생으로서 기존의 ‘법과 정치’는 기득권의 언어라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시위를 ‘당사자’로서 경험하면서 내가 법, 정치에 대해 제대로 관심 갖고 있지 않으면 그저 남이 해석해주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예를 들면, 시위 당시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교수와 교직원들관의 마찰이 있었던 것에 관해 유죄냐 무죄냐하는 논쟁이 컸어요. 법을 잘 아는 교수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당 문제를 풀어내기도 했고요. 실제로 얼마 전에는 당시 총학생회장에게 벌금형 선고유예가 이루어졌어요. 시위에 참여했던 ‘당사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죠. 이 과정에서 누구나 법과 정치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자각했어요.


참고기사: 법원, ‘시위 중 교수 감금’ 이화여대 전 학생회장 벌금형 선고유예, 아시아투데이, 2019.01.18.


특히 칭찬은 다 함께 나누면서 정작 더 많이 기여한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고 또 책임은 특정 누군가에게만 부담되는 것. 큰 부채감이 들었죠. 빚을 진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시위는 지나갔어요. 이제 ‘내’가 남았죠. 이제 뭘 해야하지? 생각하다가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청정넷)를 발견했어요. 청정넷은 ‘청년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해법을 시도하는 능동적인 시민참여 플랫폼’이에요. 멤버십 캠프, 교류회, 서울청년의회, 서울청년주간 등 다양한 행사를 서울의 청년들이 함께 꾸리죠. 여기서 청년수당, 희망두배청년통장 같은 좋은 사업들도 나왔고요. 나름대로 본격적인 공공영역 활동을 시작한 거예요. 전업 개념보단 여가 시간을 활용한 너른한 활동에 가까웠지만, 청년 당사자로서 스스로 당사자의 문제를 풀 수 있게 해주었어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seoulyg.net)의 서울청년의회.

또 2016년 말에는 탄핵사태가 벌어졌잖아요.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내가 정치를 혐오한다는 이유만으로 관심 갖지 않았던 것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어요. 이런 일련의 경험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줬죠. 앞으로 공공영역에서 공공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요.


하지만… 국회에서도 여전히 ‘소모’되고 있는 나


야학을 하며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 해도 그게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진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이화여대 시위 때는 그럼에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죠. 충돌하는 두 결론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요.


답을 찾는 여정은 계속되었어요. 졸업 후 국회에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가령 민원전화만 하더라도, 아무리 이상한 전화가 오더라도 ‘나는 공공영역의 노동자니까’ 감정 자체를 접어두고 응대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요. 다른 분야의 일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내 감정, 내 생활을 앞세우면 “난 전문성도, 책임감도 없는 거야”라는 죄의식이 생길 때가 많죠.


왜, 그냥 일반 직장에서도 분위기라는 걸 거르긴 힘들잖아요. 시간이 다 돼서 퇴근해도 “너 왜 벌써 퇴근해?”라는 말이 한 번 나오면, 그때부터 모든 구성원에게 ‘더 늦게까지,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요돼요. 공공영역에서도 마찬가지에요. 한 번 ‘나’보다 ‘공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이 강조되면 그걸 깰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공공영역에서 일을 한다고, 나라는 ‘개인’이 사라지는 건 절대 아니잖아요. 나는 어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일 수도 있어요. 일하는 만큼의 보상심리를 가질 수도 있죠. 공공영역에서 일 하면서도 나라는 개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 진 빚, ‘건강하게’ 갚는 방법 찾기


일반 기업에 ‘52시간 근무제’가 들어서면서 퇴근시간의 강요가 어느 정도 완화됐듯이, 공공영역에서의 ‘내 삶’ 역시 제도적으로 해결해야겠죠. 아쉽게도 아직까진 그런 움직임이 크지 않아요. 사실, 여전히 누군가 ‘내 삶’을 소모해 가면서도 이 일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공공영역의 노동이 돌아가고 있는 상태죠.


사명감, 문제의식, 절실함, 혹은 부채감... 개인마다 다양한 이유를 가졌겠지만 저는 그 이유를 세상을 향한 ‘오지랖’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내 삶’과 ‘공공’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고 있지만 저도 이 오지랖을 버리진 못했죠.


최근엔 제 고민을 풀기 위해 나름의 모임을 만들었어요. 한 쪽에선 난민, 청년, 아동 문제 같은 제가 공공영역에서 오랜 시간 고민해온 문제들을 토론하는 모임을, 다른 한 쪽에선 그런 사회문제를 위해 뛰면서도 개인의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죠. 저처럼 공공영역에서 일하던 친구들을 만나며 서로의 고민을 나눠볼 생각이에요.


여전히 누군가는 제 고민을 손가락질할 수 있어요. ‘요즘 청년들은 짱돌을 안 든다’고 호통을 칠 수도 있겠죠. 대체 어느 정도의 노력이 ‘짱돌’을 들었다 표현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짱돌을 들든 안 들든 내 할 수 있는 만큼 세상에 오지랖을 부리는 것도, 그 과정에서의 ‘내 삶’까지 고민하는 것도 모두 이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요.


사회를 위해 노력하던 누군가의 결론이, ‘근데 내 삶은 왜 불행해?’가 되면 안 되잖아요. 사회에 진 빚이 있다면, 그냥 갚을 게 아니라 건강하게 갚았으면 좋겠어요.



기획·편집_고정은 (청년자치정부준비단 파트너)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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