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빌더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

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12_바꿈 홍명근

작년 유치원 비리 사건이 터지고서 어린이집 논란이 뜨거웠었습니다. 원장들이 저지른 직접적인 비리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한유총이란 집단 자체가 논란이 되기도 했었고요. 학부모님들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았죠.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분들의 괴로움, 아이를 맡기기 불안한 현실, 혹은 그럼에도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런데 논란의 가운데에서, 일선 현장에 있는 보육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잘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이상했죠. 그분들이야말로 아이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분들이잖아요. 더군다나 학부모님들과도, 원장님들과도 적극적으로 만나는 분들이고요. 사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인데, 이 논란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분들을 불러 모아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가졌어요.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여타 관계자분들, 혹은 학생이나 회사원 등 일반 시민들까지. 서로의 문제의식, 대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은 거예요. 모아진 의견들은 여러 플랫폼을 통해 시민들에게, 또 유치원 3법을 추진하는 박용진 의원실에도 전달할 예정이에요.  


이번 어린이집 이슈 외에도 다른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런 토론의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고, 대안을 고민하고, 다시 그것을 사회에 전달하는 것. 이러한 작업 일체를 바로 “공론장”이라고 부르죠.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청년들이 이끄는 공론장


공론장이란 개념은 예전부터 존재했었지만, 개념 형태를 넘어서 사회에 직접적인 공론장이 들어선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신고리 공론화 위원회'가 대표적인 사례죠. 여러 시민단체들의 네트워킹이야 그전부터 활발했지만, 시민들 개개인의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대안을 사회에 전달해낸 건 그때부터였죠. 저희가 하려는 건 이 공론장을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활성화시키고 그 결과물을 시민사회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프로세스의 형성이에요.  


공론장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죠.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그래서 저희 단체의 이름도 '바꿈'이에요. 그리고 사회를 '바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20-30대 청년들의 주도죠. 공론장의 주체가 바로 청년이 되는 것.  

지금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계층은 주로 50-60대 남성이잖아요.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일종의 '주도권'이 균형감 있게 잡혔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세대, 지역, 나이, 성별, 또는 경제적, 사회적 계층 같은 것들에 의해 '사회 주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이 갈려버리죠. 당연히 전반적인 사회 불평등도 그런 기준에 의해 생기고요.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게 바로 청년들, 그리고 그 이외에도 잘 들리지 않던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모이는 공론장인 거죠. 

'배틀'에서 '숙의'로


공론장이 싫은 사람도 분명 있겠죠. 서로 싸운다고 피곤해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이 극명하게 부딪히면서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는 이 '피곤한'과정이야말로 공론장의 의의라고 봐요.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갈등을 빚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 생각들을 최대한 모으고 모을수록, 그리고 토론과 투표를 반복할수록, 그렇게 서로의 생각에 영향을 줄수록 더 합리적인 합의 지점이 나올 수 있거든요. 저희는 그 '지점'을 찾아가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희가 주재한 공론장의 이름을 '정책배틀'로 짓기도 했어요. “일베와 같은 혐오 사이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혹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의 두 정상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등 의견이 첨예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고, 투표를 하고, 다시 의견을 수정하면서 결국 결론을 냈죠.  


정상회단 때의 '정책배틀'에선, 최종 투표로 선정된 10개의 정책안을 통일부에 전달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실제 정상회담의 결과물과도 비슷했죠. 저희의 의견이 정상회담의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실제 정책과 많은 접점이 있을 만큼 토론의 결과가 의미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배틀'을 통해 이런 결과를 내고, 그것이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숙의'겠죠.  

사회를 바꾸는 일,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바꿈'은 사실 5년짜리 프로젝트 단체예요. 2015년부터 활동 중이니 앞으로 2년 정도 남은 셈이죠. 저희가 원하는 건 공론장인데, 그걸 오래도록 똑같은 사람들이 주도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관료화의 위험이 있잖아요. 그보단 '어차피 없어질 단체'로 남아서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더 건강하다고 생각했죠.  


남은 기간 동안엔 20-30대 청년들의 관심사를 주제로 모임을 가지고, 그 결과물로 책을 내보려고 기획 중이에요. '문학', '여성'같은 젠더 키워드가 많아요. 그다음엔 정치, 환경, 혹은 '30대의 삶'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도 있죠. 지금 시대 '사회 주도층'의 시선에선 잘 보이지 않는 것들 말이에요.  


물론 5년짜리 '바꿈' 활동이 사회를 확 바꿔놓지는 못할 거예요. 기본적으로 이벤트성 활동이기도 하고, 토론 결과가 뜬구름 잡는 소리에 그칠 때도 있죠.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은 언제나 길고 느린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어요. 이런 활동들이 모이고 모여 일종의 시민교육 효과를 끌어낼 수 있다면, 언젠가 사회 곳곳에 공론장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들어서겠죠. 



바꿈 홈페이지 change2020.org

바꿈 페이스북 changechange2020



기획·편집_청년자치정부준비단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 진 빚 갚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