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13_ 김형준
저는 정말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동아리에 들기도 했고, 랩을 좋아해서 랩 크루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어요. 동아리에선 회장을 맡기도 했고, 힙합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모두 취미로 남긴 일이죠.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 아쉽지만, 지금은 접어두고 학업에 열중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저것 열심히 하고 다니는 대학생을 생각하시면 그게 바로 저일 거예요. 남들과 다를 거 없이 생활하고, 남들과 다를 거 없는 고민을 하며 살죠.
그리고 대학생 최대의 고민이 취업이잖아요? 저도 요즘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졸업까지 1학기 남았는데 학점이 시원치 않아 고민하는, 그 흔한 대학생이 바로 저예요. 사실은 일반기업 취업은 생각도 못 했어요. 학점 때문에 이력서를 내면 바로 분쇄기 행 아닐까 했었죠. 그래서 바쁘게 '노오력'중이죠. 그래도 도전을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친구끼리 정치 얘기 하면 어떨까
물론 따로 해보고 싶은 것도 있어요. 정치 영역 쪽에 관심이 좀 있거든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라는 시민운동단체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었고, 국회 보좌진 양성 교육에 참여한 적도 있어요. 거기서 만났던 동료들은 대부분 정치 쪽과 관련된 전공이더라고요. 저는 전혀 다른 전공이거든요. 물론 정치, 시사 이슈 같은 것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었지만요.
저는 이쪽의 분들을 만나면서 무언가 괴리감을 조금 느꼈어요. 괴리감을 느낀 건 저 자체라기보다는 저의 환경, 즉 평범한 대학생으로서의 주변 환경에 대해서였죠. 왜 “친한 친구끼리 정치 얘기하지 마라”는 말도 있잖아요. 뭐 어느 정도 공감은 되지만, 제 주위를 보면 그 말이 진짜 현실인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거든요. 평소에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가 정석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말이에요. 모두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는 있겠지만, 그에 대해 대화를 하려는 의지는 부족한 편이죠. 아니면, 아예 그런 쪽으로는 생각을 안 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도 분명 있고요.
그럼 무슨 얘기를 하냐고요? '대학생 최대의 고민' 얘기인 취업 이야기가 대부분이죠. 취업 얘기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나이대도 딱 그 나이대인 데다가, 특히나 노력 중인 '취준'의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엔 하소연하고 싶은 게 당연하죠. 그런데 취업 얘기에도 정치적인 부분이 분명 있잖아요. 구조적인 문제요. 그런데 그 부분은 대화 주제에서 막혀버리는 거예요. “정치 얘기 하지 마라”
'우리 탓'은 이제 그만
취업 얘기, 그중에서도 '취준'실패에 대한 얘기는 대부분 '내 탓'으로 수렴돼요. 내 학력이 부족해서, 내 학점이 부족해서, 혹은 내 스펙이 부족해서. 물론 지금의 취업 시장에선 일리 있는 말이죠. 이러나저러나 내 노력을 갈아 넣어야 취업이 되니까요. 모든 걸 사회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취직 실패에 있어선 개인의 부족함도 분명 있겠지만 취업 시장 전체를 보면 구조적인 문제가 분명히 있어요. 하다못해 청년들이 대우가 좋은 외국기업이나 대기업만 원한다는 말만 봐도, 사실은 사회적인 문제가 얽혀 있잖아요.
대학생 최대의 고민이 취업이라고 얘기했죠. 모두가 취업을 원하고, 그게 너무 절실하니까 거기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학점, 스펙의 숫자가 우리 인생에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좀 더 여유 있는 삶, 내 탓을 하지 않고, 숫자에 목메지 않는 삶을 위해선 결국 사회 구조의 문제가 개선돼야겠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사회 구조에 대해 더 배워야 하고, 저는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도 이런 배움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정치 얘기하지 마라”가 아니라 적극적인 정치적 수다가 필요한 이유죠.
더 만나고, 더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여러 청년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죠. 예전부터 정치 얘기를 잘 하지 않거나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을 모아서 의도적인 정치 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연락처를 뒤져 친구든 지인이든, 학생이든 취준생이든 최대한 멤버들을 끌어모았죠. 모아서 '정치 얘기' 좀 해보자고요. '정치 수다'를 위한 모임을 만든 거예요.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많은 게 달라질 거라 믿어요. 적어도 우리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고 그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보다 보면 나만 힘들거나 나만 부족한 사람이구나 하지 않을 수 있겠죠. 그것만으로 위안이 되잖아요.
그래서 이런 모임이 이런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봐요. 앞으로는 제 지인들의 모임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몰랐던 사람, 몰랐던 계층, 대학생이 아닌 학생, 청년이 아닌 청소년, 남성이 아닌 여성. 더 다양한 사람이 만날수록 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물론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정책적인 변화를 이끌 정도로 거대한 결과를 내진 못하겠죠. 그런데 결과가 똑같다고 하더라도 과정만은 달라지는 거잖아요. 실제적인 결과를 끌어내지 못하더라도 더 나은 과정을 갖게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 믿어요.
기획·편집_청년자치정부준비단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