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24_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한솔
'빈민아파트'를 기억하시나요?
작년에 '빈민 아파트' 논란이 있었죠. 청년 세입자들을 위한 임대주택 제공 정책을 둘러싼 논란. 임대주택이 신축될 지역의 주민들이 임대주택을 '빈민 아파트'라 지칭하며 정책에 반발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당시 주민들의 반대 시위에 맞불 집회를 놓는 등,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대응했던 이들도 있었죠. 바로 저희 “민달팽이”를 비롯한 청년세입자들이었어요. 여론 설득을 위해 거의 1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했죠.
저희에게는 일종의 확신이 있었어요. 보통 '빈민 아파트'같은 임대주택 이슈를 보면, 얼핏 절대다수 지역주민과 정책수혜자(청년)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저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 지역 사람들 모두가 임대주택을 반대할까?' 절대 아닐 것 같았거든요.
절대다수 지역주민은 임대주택을 반대하지 않아요. 1년간의 프로젝트 활동은 이걸 확인하고 입증해 나가는 과정이었어요. 지역 상인들의 경우 임대주택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어요. 상권이 활성화되니까, 오히려 사람이 많이 들어오면 반기는 분위기였죠. 지역 거주 중인 세입자들은? 당연히 아무 상관도 없고요. 오히려 무슨 좋은 시설이 들어올 때 월세라도 오를까 걱정이지, 주택이야 좋다, 괜찮다 이런 쪽이었어요.
그럼 대체 누가 반대하는 걸까요? 지역주민 중 2~30%의 건물을 소유한 그래서 입김이 센 사람들만 반대를 하는 거예요. 그들의 여론이 마치 지역 전체의 여론인 양, “지역주민 vs 임대주택 세입자들”의 구도로 그림이 만들어졌던 거지요. 1년 동안 바로 이러한 점을 입증하고, 밖으로 드러냈죠.
주거 정책의 '패러다임', 바뀔 순 없을까?
민달팽이유니온은 주거취약계층으로 몰린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보기 위해 창립된 단체에요. 저는 2011년 창립 때부터 함께 해왔죠. 오랜 시간을 활동에 쏟았지만, 사실 뭐 특정한 계기가 있어서 이 길을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청년 주거문제는, 너무 일반적인 문제잖아요? 소위 '부동산 불패신화'속에서 주거 가격은 폭등하고,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은 미비한 상황에서 주거문제는 주택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문제죠.
바로 위에서는 임대주택 갈등에 대해 길게 말씀 드렸지만, 애초에 임대주택 공급만으로 청년들의 주거 문제가 모두 해결될 리도 없어요. 근본적인 법안 개정이 절실한 상황인데, 주거 문제는 '청년문제'로 특정되기 이전부터 너무 다양한 문제들이 축정돼 온 분야잖아요. 현재 시행되는 임대주택 정책만 보더라도, 그리 이상적인 방식으로 시행 중이라 평할 수는 없고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부동산 정책의 패러다임이 여전히 (자산을 소유한) 4인 가구 중심으로 잡혀 있다는 점이죠. 근본적으로 '자산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청년, 혹은 여타 주거 취약계층 세입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것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정책을 설계하는 패러다임이 '1인 가구', '세입자', '자산을 가지지 못한 청년층' 등 주거 취약계층들까지 넓혀져야 하죠.
지금의 주거정책은 여전히 4인 가구를 중심으로 짜이면서, 청년 등 주거취약계층의 문제는 곁다리 혹은 보여주기식으로 짜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문제가 발생하죠. 가령 청년 주거정책의 일환으로 월세 보증금을 지원, 대출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주거비용이 50만원 일 때 5만원을 지급한다고 하면, 이 50만원이 더 오르지 않아야 효과가 나오겠죠. 그러나 지금의 형태는 '집을 소유하는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득을 줘야 하는 행태에요. 기초 비용을 통제하지 않으니 5만원을 지급해봐야 집값이 55만원으로 올라버리는 식이 되죠. 임대주택도 마찬가지. 공동주택으로 집을 지급하더라도 나머지 지역의 가격이 붕 떠버려요.
'공공의 가치'를 말하는 민달팽이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집을 '공공의 가치'로 보자는 거예요. 최근엔 민간에서도 임대주택, 쉐어하우스, 공간 운영 등 '공공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대부분 사업체로서 공간 운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더라고요. 집에선 '사람이 산다'라는, 그리고 그 집에서 사람이 좀 더 살아야 한다 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는 거의 없죠.
사업으로서 접근하면 '공동 공간'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 공간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지 못해요. 어느 정도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고객이 돼야 수익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 '집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는 건, 여기 이곳에 누구나 와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게 기본 미션이 되는 거예요.
물론 경제적 지속가능에 대한 의문이 들 수는 있어요. 정말 누구나 들어와 살게 하려면, 최소 시세 (임대로)의 5~60% 까지는 내려가야 가능하니까요. 불가능한 소리 집어치우라 하실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저희는 직접 하고 있어요. '민달팽이'라는 공동체 주택을 10체 규모, 180여명 거주로 운영 중이죠. 집의 '공공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만큼 낮은 금액의 임대료만으로요.
이미 말했듯 서울시가 운영하는 임대주택 정책도 대부분 민간 자본과 연계하여 시행되고 있어요. 민간의 수익율을 보장해줘야 하니, 주택 임대를 시세의 5~60%까지로 제공한다는 건 아직 꿈같은 일이죠. 저희는 그래서 더 사명감을 느껴요.
만약 저희가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면, 그 자체로 “공공의 가치를 우선해서는 단체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거잖아요. 주거취약계층도 들어갈 수 있는 공공모델을 운영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보장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죠. '누구나 살 수 있는 집'을 위해서요.
기획·편집_청년자치정부준비단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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